[미공개 취향] 세번째 이야기
본가를 떠나 혼자 산지 오래되었음에도 출퇴근 시간은 항상 길었다. 한 직장을 오랜 기간 다닐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내가 아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출퇴근 시간보다 익숙함에 초점을 두고 사는 곳을 구했더니 통근 시간이 편도 1시간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잘 없다. 최악일 때는 1시간 20분이었다. 관악구에서 은평구로 이동하는 길이었는데, 교통정체 때문에 택시를 탄다 해도 1시간 20분이 걸렸다. 그때는 정신건강이 좋지 않던 때라 1시간 20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나의 취향,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가 좋다. 물론 차가 많이 막히지 않을 때. 지하철은 언제 타도 항상 까마득한 기분이 든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곳에 내려줘서 좋긴 하지만 지하철은 창밖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동과 도착에만 목적을 둔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날이 어두워졌는지, 눈이 오는지,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고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나는 대체로 지하철을 타고 움직일 일이 많아서 그런지 지하철과 관련된 나쁜 추억도 많다. 대표적으로 지하철에서 애플워치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헐거운 밴드가 그런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으랴. 반면 버스는, 물론 앉아 갈 때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창 밖의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타면 빗물이 쏟아지는 창문을 보며 운치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어쨌든 간에 이 모든 취향은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지하철 안에" "서서 가야" 하는 순간 무효화된다. 아직도 생각난다. 은평구의 회사에 다닐 때, 교대역에서 환승해야 했는데 넓지 않은 환승 통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한숨 쉬던 순간이. 한동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할 때 그랬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숨도 못 쉬겠는 지하철에 타고 있으면 급속충전의 반대 행위, 급속방전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이 미어지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 숨이 안 쉬어지는 것에 더불어 운전 기사님의 운전 실력에 따라 생사가 오가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나마도 탈 수 있으면 다행인 게, 줄이 너무 길어서 몇 대씩 차를 보내야 하면 그냥 한숨만 나온다. 더 못 탄다는데 몸을 우겨넣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적어도 앉아서 갈 수라도 있다면 다른 얘기다. 아침 출근길에 앉아서 갈 수 있는 날이면 난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오늘 하루 일이 잘 풀리겠다는 예감마저 들었다. 단지 3-40분 정도인데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몸에 에너지가 솟고 세상이 살 만한 것 같다. 또, 지하철에 서 있을 때는 릴스를 넘기는 정도밖에 뭔가를 할 수 없지만 앉아 있으면 제법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버스도 마찬가지인데, 어디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여행이라도 가는 기분인 척 휴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4호선에서 좌석 없애기를 추진한다는 걸 본 순간 한숨이 나왔다. 앉아 가는 축복이 이제 원천 차단당하는구나. 대부분 앉아가지 못한대도 앉아 갈 자리가 있다는 건 출퇴근길의 오아시스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나마 많이 앉아있기 때문에 서 있기가 편한 거지, 모두가 서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4호선에 좌석 없는 칸이 도입된 이후로는 이직 시기가 겹쳐 탈 일이 없었는데, 다시 타게 된다면 또 걱정이다. 그저 출퇴근 길에 앉아가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난데, 왜 그것조차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