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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Mar 01. 2024

오랜 세월 김사월

내가 김사월을 좋아하는 이유

20살 때 남몰래 연심을 품고 있던 동아리 선배가 있었다. 그때는 워낙 금사빠여서 아무나 좀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다 좋아했다. 그 오빠도 나에게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기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좀 더 알아가니 내 눈에 힙해보이는 취향을 갖고 있어서 동경하게 됐다. 나도 힙해보이는 20대의 삶을 살고 싶었고 그 오빠가 좋아한다는 거는 다 한 번씩 해봤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노래가 김사월의 곡들이었다. 그때는 아직 김사월이 단독 음반을 낼 때가 아니었고, 김사월x김해원의 ‘지옥으로 가버려‘로 그 목소리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 노래가 마음에 꼭 들었고, 온스테이지의 라이브 무대까지 챙겨본 후 그 음반에 있는 전곡을 돌려 들으며 다녔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해 나는 인천에 살고 있었고 서울에 갈 일이 많았는데,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내 귓전에는 김사월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아직 햇살이 남아 있을 무렵 버스로 출발할 때부터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2015년 10월 말, ‘수잔’이 발매되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버스 안에서 다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 나는 ‘새’와 ‘접속’, 그리고 ‘악취’를 가장 사랑했다. 세상에 그렇게 와닿는 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2015년 가을과 겨울은내내 “우린 서로를 참을 수 없어 여기까지 외면했지”를 입 속에서 굴리며 다녔다. 그때는 그토록 숨막히게 위험한 사랑에 대한 로망도 절절하던 때라 그 앨범을 더 아꼈던 것 같다. cd 플레이어도 없으면서 앨범까지 소장한 채로 21살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사실 김사월의 곡 하나하나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얼마나 마음이 떨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어딜 가든 무얼 하든 그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니는 게 당연해서. 늘 부족한 살림이었지만 매년 겨울이면 김사월의 콘서트에 가는 게 그 해의 연말 전통이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하면 언제나 김사월을 먼저 말했다. 몇 년 전 만나서 썸을 타던 어떤 남자는 내가 그렇게 답하자 “김사월 좋아하는 사람은 정신 건강이 별로라던데…”라며 끝을 흐렸다. 나는 그 말에 ’아니거든요!‘라고 응수할 수 없어 속이 상했다. 그러고 얼마 후 그와 연락이 끊긴 걸 보면 그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겠지.


오늘 김사월의 신곡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목이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였다. 가사에 이런 말이 나왔다. “난 사랑받지 못하는 허영이 있어요, 나를 버리면 나는 행복해질 걸요”. 역설적인 말로 느껴졌지만 나는 금방 이해가 됐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아껴줄 때 불안해하고, 오히려 버려진 순간 ‘그래 이럴 줄 알았어‘하며 안심할 때가. 그런 습관이 나를 얼마나 궁지로 몰아넣었는지에 대해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사랑을 사랑인 줄 모르고 버림을 애정이라 여기는 무서운 습관. 진정으로 나를 소중히 여기는 관심을 받지 않을 때야 내가 나답다고 여기는 몹쓸 버릇.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가끔 또 혼자 땅을 파고 들어갈 때면 ’나에게 이런 사랑을 과분한데…‘ 같은 답 없는 생각에 빠진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혼낸다. 이따위 고민하는 걸 알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죄 짓는 거라고.


몇 번이고 이런 다짐과 걱정을 반복해봤기 때문에 김사월 역시 이런 노래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그래서 김사월을 좋아한다. 계속 갈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이런 실수 나도 해봤어, 너도 해봤지? 하고 말을 걸 줄 아는 예술가라서. 앞으로도 오랜 세월 김사월의 노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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