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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Feb 27. 2024

다 나보다 잘자

잘 못 자는 사람의 외로움

살면서 여러번 불면증에 대해 글을 썼다. 그렇게 글을 여러번 쓰며 불면증 좀 낫게 해달라고 빌어서인지 이제 잠에 못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저질의 잠을 잔다. 온갖 꿈을 꾼다.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끔찍한 상황이 꿈에 나온다. 그래서 새벽에도 서너 번 이상 깬다. 그냥 그게 어쩔 수 없는 나의 상태라고 받아들인지 오래다.


하지만 의사는 또 내 앞에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다.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턱이 아픈지 2주째, 나 좀 살려달란 심정으로 찾은 병원에서 의사가 X-레이 사진을 한참 보더니 말한다. 관절이나 뼈에는 이상이 없고 근육에 염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의사와 나는 그때부터 원인을 찾기 위해 스무고개를 한다. 최근 큰 외상을 입은 적이 있나요? 목디스크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 둘씩 질문을 던지던 의사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이 온다.


“혹시 잠은 잘 주무세요?”

“잘 자…긴 하는데 자주 깨요.”

“몇번이나 깨세요?”

“최소 서너 번? 많으면 여섯 번도 깨요.”

“그럼 잘 자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턱이 아픈 겁니다.”


그러면서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잠을 설치는 게 어째서 턱 근육에 안 좋은지 설명한다. 사람은 잠을 자면서 이완 상태에 들어가는데, 한번 깰 때마다 다시 급격한 긴장 상태로 변하고, 그러면서 턱관절에 꽉 하고 힘이 들어간다는 거다. 이를 갈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입을 앙 다무는 습관은 있을 수 있다고. 의사는 왜 잠을 설치는 것 같냐고 묻는다. 글쎄요, 그걸 알았으면 저도 푹 잤겠죠?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또 다시 스무고개. 혹시 예민한 성격입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눈을 반짝인다. 성격이 예민하면 잠을 설치는 건 당연한 결과고 애초에 그것 자체가 근육 긴장을 일으켜서 몸에 별로 좋지 않단다. 예민한 성미를 달래 보라는 말을 잔뜩 듣고 병원을 나온다.


어떻게 하면 예민하지 않게 사는가, 아니, 어떻게 하면 잘 자는가. 이제 해결할 의지도 없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내 운명인가보다 싶었는데 이대로 살면 턱이 박살날 것 같다. 잠 잘 자는 법을 검색해 보니 뻔한 얘기만 나온다. 예민한 심기를 가라앉히는 법에 대해 검색해 보니 또 뻔한 얘기만 나온다. 그렇게 찾고 찾다가 그냥 드러눕는다. 에이씨 나도 몰라.


잠을 설치는 것도, 예민한 것도 참 외로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보다 잘 자고 나보다 둔하다. 나 혼자 잠도 못 자고 괜히 별 걸 다 신경 쓰고 산다. 그래서 이렇게 턱도 아프고 하여튼 온 몸이 다 아프다. 진심을 담아 사람들에게 잘 자라고, 좋은 밤 되라고 말도 하지만 나는 아마 오늘도 잘 못 잘 거다. 내일도 턱이 아플 거다. 어떻게 해보려는데 잘 안 된다. 용한 한의원이 있다는데 거기라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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