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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pr 20. 2024

“그 대학”의 그림자

유치한 열등감,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19살 겨울 무렵에 쓴 일기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나 아니라면 좋겠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난 머릿속이 번쩍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째서 내가 이런 문장을 일기에 적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났다.


그때는 한창 입시철이었다. “떨어진다”는 말이라도 했다간 성적이 떨어질까 마음을 졸이던 수능날이 끝나고 이런저런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가 되었다. 직전 모의고사에서 마음에 쏙 드는 성적을 받았기에 수능 성적에 기대를 걸었지만 수능 당일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평소 실력에 비해 시험을 많이 망쳤다. 그 사실이 내 성적으로 넣을 수 있는 대학을 나열해보니 더욱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지금이야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어른인 척 말하지만 그때는 그게 내 삶에서 제일 중요했다. 나는 언제나 주변에서 공부 잘 하는 애로 통했고, 그런 시선에 우쭐해져 있던 나는 스스로 당연히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입학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온갖 궁리를 했다. 목표대학에 가려면 입학 점수가 아주 낮은 편인 학과에 지원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 전공은 내 관심사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랑은 더욱 더 많이 떨어져 있었으나 “그 대학”의 학과라는 게 나를 흔들리게 했다. 끝까지 고민했다. 그냥 이 전공으로 지원해볼까? 그러면 나는 ‘공부 잘 하는 애’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내가 적당히 흥미가 있는 전공의, 목표한 대학은 아닌 다른 곳에 지원했다.


하지만 도저히 내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짝사랑하는 상대가 나에게는 과분한 존재란 걸 알면서, 나는 친구로 지내는 게 최선이란 걸 알면서도, ‘쟤랑 사귀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며 망상에 빠지는 심정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닿을 수 없는 짝사랑의 sns를 염탐하는 찌질한 심정으로, “그 대학” 재학생들의 블로그를 염탐했다(인스타 같은 게 없던 시절이었고, 나는 페이스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한 명의 블로그에 꽂혔다.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그 대학” 1학년의 블로그였다.


그녀는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다. 청바지가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날씬하고 예쁘고 대학도 “그곳”이었다. 자랑할 것이 많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그때 나는 “그 대학”만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시절이어서 정말 부러워서 우울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래서 일기에 그렇게 쓴 거다. “내가 나 아니라면 좋겠다. 저 사람이라면 좋겠다.” 하고.


나는 지금까지도 그 블로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정도로 그 사람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에게 자랑할만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이렇게나 자랑할만한 게 없다니 서글펐다. 나는 전투적인 태도로 이것저것 성취했다고 생각했으나 딱히 남은 게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찌질한 전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그 대학”의 자취를 좇으면서 스무살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성숙해져서 이러한 글의 마지막을 ”하지만 나중에야 안 것은 그런 식의 비교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멋진 문장으로 장식할 줄 알았다. 하나마나한 말이다. 비교는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만, 갑자기 눈부신 빛을 보면 눈을 찌푸리는 것처럼 잘난 사람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비교한다. 또 질투한다. 그렇게 질투한다고 해서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대로고, 하나도 생산적인 생각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나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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