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잎새 Mar 22. 2023

이글루스에는 쓰지 않을 작별인사

왜냐면 거긴 너무 징그럽잖아요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다. 나는 몇 년째 그곳에 아무 글도 쓰지 않았지만, 쓰지 않고도 그 공간이 거기에 있는 것과 영영 문을 닫는 건 다른 이야기라서 (이글루스를 사용했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한 시절을 보내는 마음으로 공지 메일을 읽었다.

폴폴 쌓인 먼지를 털며 내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비공개로 돌려진 글이 603개 있다고 나온다. 페이지는 한없이 뒤로 넘어간다. 첫 번째 글은 2006년 8월 7일에 쓰였다. 제목은 '매미'이다. 이때는 긴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 마음에 여러 목소리가 있어서 자꾸만 말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데 그걸 단어로 길어 올리는 법은 몰랐다. 그래서 짧은 문장을 서너 개 나열하고 그걸 일기라 불렀다. 과거에 가까울수록 단어들은 거칠고 투박하다. 욕과 욕에 가까운 말과 욕이 되지 못한 말들이 갓 성인이 된 나를 키웠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썼다. 말들은 점점 길어졌고 나는 내 생각을 단어로 바꾸는 일에 아주 익숙해졌다. 나는 선뜻 나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일기를 쓰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나를 인정했다. 책을 읽는 것 말고 10년 이상 해온 일은 없었고, 쓰고 싶은 마음은 늘 거기에 있었다.

일기를 쓰면서 몇몇의 남자와 몇몇의 여자를 만났다. 대부분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내가 마음 같은 것을 늘어놓으면 말없이 찾아와  마음  조각을 줍고  자기 마음 같은 것을 꺼내놓고 갔다. 우리는 느리게 만나고 모른  얘기했다. 단어와 단어를 엮어 조심스레 서로를 보여주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만날까요, 하고 마치 프러포즈라도 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글로 이미 너무 많은 얘기를  사람과 실물로 만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일은 어딘가 마법 같은 면이 있었다. 그때의 내가 20대였기에 어울리는 만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의 20대는 이글루스라는 플랫폼 안에, 아니 플랫폼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조악한 공간 안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거기서 만나야  친구를 만났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도무지 거기에  수가 없다. 왜냐면 이런 인사까지 써버리기에 나는  이상 20대가 아니고, 이글루스라는 단어로 일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한껏 감상적인 마음이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는 공개로 돌리지 못할 글들을 읽으며 여기에 안녕을 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