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거긴 너무 징그럽잖아요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다. 나는 몇 년째 그곳에 아무 글도 쓰지 않았지만, 쓰지 않고도 그 공간이 거기에 있는 것과 영영 문을 닫는 건 다른 이야기라서 (이글루스를 사용했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한 시절을 보내는 마음으로 공지 메일을 읽었다.
폴폴 쌓인 먼지를 털며 내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비공개로 돌려진 글이 603개 있다고 나온다. 페이지는 한없이 뒤로 넘어간다. 첫 번째 글은 2006년 8월 7일에 쓰였다. 제목은 '매미'이다. 이때는 긴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 마음에 여러 목소리가 있어서 자꾸만 말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데 그걸 단어로 길어 올리는 법은 몰랐다. 그래서 짧은 문장을 서너 개 나열하고 그걸 일기라 불렀다. 과거에 가까울수록 단어들은 거칠고 투박하다. 욕과 욕에 가까운 말과 욕이 되지 못한 말들이 갓 성인이 된 나를 키웠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썼다. 말들은 점점 길어졌고 나는 내 생각을 단어로 바꾸는 일에 아주 익숙해졌다. 나는 선뜻 나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일기를 쓰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나를 인정했다. 책을 읽는 것 말고 10년 이상 해온 일은 없었고, 쓰고 싶은 마음은 늘 거기에 있었다.
일기를 쓰면서 몇몇의 남자와 몇몇의 여자를 만났다. 대부분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내가 마음 같은 것을 늘어놓으면 말없이 찾아와 내 마음 한 조각을 줍고 또 자기 마음 같은 것을 꺼내놓고 갔다. 우리는 느리게 만나고 모른 척 얘기했다. 단어와 단어를 엮어 조심스레 서로를 보여주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한 번 만날까요, 하고 마치 프러포즈라도 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글로 이미 너무 많은 얘기를 한 사람과 실물로 만나 그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일은 어딘가 마법 같은 면이 있었다. 그때의 내가 20대였기에 어울리는 만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의 20대는 이글루스라는 플랫폼 안에, 아니 플랫폼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 조악한 공간 안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거기서 만나야 할 친구를 만났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래도 이 마지막 인사는 도무지 거기에 쓸 수가 없다. 왜냐면 이런 인사까지 써버리기에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고, 이글루스라는 단어로 일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한껏 감상적인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는 공개로 돌리지 못할 글들을 읽으며 여기에 안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