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차,
동생과 나의 나이 차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순간인 고3 때 동생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의 혼란은 사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대하지 않았다. 엄마의 배에 애가 하나 있고, 외동이었던 내게 있었던 엄마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책임감이 오히려 떨어져 나간다는 약간의 시원함이 전부였다.
스스로도 엄마에 대해 약간이나마 마음의 짐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매일 나 원하는 대로 하고 살 거야!! 소리쳤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외동이었는데 말이다.
엄마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혼자 일어서고 싶어 하는 독립적인 성향도 있었기에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단번에 독립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엄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신남도 있었다. 엄마가 홀로 외롭지 않겠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동생이란 존재에 대한 신기함도 있었다. 물론, 나에게 영향만 주지 않는다면.
어린 시절부터 외동으로 태어나 얼마나 외로웠던가.
형제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10년을 넘게 사니 성인이 막 되기 전 내게 동생을 갖게 해 주셨다. 엄마는. Oh mama.
낭만적이고 가족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소중함만 남아있다면 그건 아마 인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자고로 산전수전, 고통과 갈등의 존재 속에서 행복과 기쁨이 중간중간 럭키박스처럼 나타나 그를 더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마냥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던 동생의 탄생은 내게 럭키박스를 소중히 여기게 했던 극적인 존재였다. 즉, 내게 인생의 고통과 쓴맛을 제대로 느껴준 이인데 과도기가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녀와 나의 관계와 일상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8살과 27살,
19살 차이의 자매 일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