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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ea Oct 06. 2021

우리가 안고가야 할 것들

시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픔을 이겨낼 희망도 받아들인 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남동생이 전역을 했다.

엄마가 5월에 돌아가셨으니 서너 달쯤 지난 시점에 장례식 이후로 남동생을 처음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데리고 초밥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요즘 군대는 워낙 연락망이 좋기에 우린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지만, 나는 동생이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가 많이 궁금했다. 더 정확히는 엄마의 죽음 이후의 동생의 심리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나야 심리센터도 가고 정신과도 오고 가면서 치료를 이어갔지만, 우리 언니와 남동생은 엄마의 이야기도 잘 꺼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이 더 걱정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정말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며 초밥을 먹다가 어느 정도 다 먹어갈때 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장례식 이후에 엄마 얘기 주변에 한적 있어?"


동생은 엄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두려워하는 듯한 동생의 표정을 보고 나는 괜한말을 꺼낸 것 같아 아차, 싶었다. 동생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였다.

엄마가 죽기 일주일 전 동생을 보고 싶다고 했을때, 동생이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었기에 혹시 그 이유로 너가 죄책감을 느끼냐 물어보니 동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야"  


동생은 그 모든 힘듦도 본인이 안고 가야 할 일이라고 했다.


"네 탓이 아니야 정말로"


엄마는 동생에게도 긴 카톡을 남겼던 걸로 알고있다. 동생은 그 톡을 읽지 않고 있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읽었다고 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늙은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던 것 같다.



엄마 발인 , 엄마가 한줌의 재로 돌아가는  시간 나는 동생이랑 둘이 밖에서 서로를 부여안고 엉엉 울었다.

그래도 남자라고 장례식 내내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던 동생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내며 너무 아파했다.

동생은 엄마 미안해 나 때문이야 라고 계속, 계속 말했던 것 같다.

비가 한두방울씩 우리 위로 떨어지며, 엄마도 같이 울었다.


우리 때문은 절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동생이 그 모든 아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에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슬픔을 이겨낼 희망이 우리앞에 가득할거라 믿는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우리 언니, 내 동생 그리고 나 . 엄마 그리고 아빠 우리 가족. 우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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