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과 함께 산다는 것
엊그제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다. 우린 모두가 혼자 사는 소위 말하는 자취러들이였는데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적적함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듯하다.
나 또한 혼자 살고있지만, 혼자 살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세 개의 화분이 있다. 정확히는 식구가 셋이 더 있다. 예전 삼남매가 함께 모여 살 때 아빠가 사준 테이블 야자, 그리고 엄마가 준 식물이 둘 있는데 이 식물은 이름이 길고 생소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각각 푸르미,맥주,뉴리라는 이름이 주어져 불리고 있는 나의 '반려식물'들이다.
식물이 강아지처럼 불러도 오지 않고 놀아달라고 하지도 못하기에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줄수 없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처음 이 식물들을 키울 때 흙이 마를 때쯤 물이나 줘야지 하고 생각한 게 전부였으나, 벌써 몇 년째 함께 지내다 보니 이 친구들과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물을 줄 때, 식물이 물을 줘하고 말하지는 못하나 슬쩍보고 잎이 말라있으면 내가 그것을 보고 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의 기지개를 활짝 켜며 살아나 방끗 웃어주는 표정이 싱그로이 느껴진다. 선반 위에 올려둔 맥주와 뉴리가 창문 쪽으로 잎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는 햇빛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창가에 내어두고, 또 너무 강한 햇볕이 들 땐 풀이 죽는 것을 보고 이런 날엔 선반 위에 올려두는 게 낫구나 하고 선반 위에 다시 놓아주는 것.
내가 언제 누군가에게 이토록 마음을 써보았는가 상기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때이다.
우리는 식물을 키운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식물이 나와 함께 살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친구들도 자연에서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그곳에선 나와 함께 이 작은 집 작은 화분 속에 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올해는 셋 모두가 활짝 예쁜 꽃을 피어주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외로움은 홀로 있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 아닌 다른 대상에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그 마음의 부재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가 내리는 오늘, 비를 맞지 못하는 화분들에 물을 주니 흙속으로 스며들며 나는 소리가 유독 정답게 느껴진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