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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ea Aug 06. 2021

제 마음 좀 치료해주세요

네 번째.자살 유가족의혼란스러운 마음


이전의 나는 마음의 병 (우울증 등)을 그다지 심각한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도 ,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고 잊혔기 때문에 병이라면 가벼운 감기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의 죽음에서 나는 지독한 우울증의 자취를 발견했기 때문에, 마음의 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게다가 엄마의 죽음을 마주하며 나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버린 까닭도 더해졌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 , 나는 여기저기 심리센터를 찾아보았다.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일이었고, 나는 원체 남 앞에서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상담사라 해도 내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살아야 했다. 살기 위해 나는 그곳에 갔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아.. 그.. 엄마가 지난주에 자살을 하셔서.."


첫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말을 시작하니 끝도 없이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되었다. 상담사 분은 별다른 질문 없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셨다.

내심 내 앞의 상담 선생님이 나를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어떤 위로가 되었다.


"엄마가 죽은 게 제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ㅇㅇ씨 탓이 아니에요"

"엄마는 아파서 그러신 것 같아요. 그리고 술을 드셔서.. 술을 드셔서 충동적으로 그러신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는데.."

"맞아요.. 그런 거예요"


상담을 받으며 치유받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는 다시 엄마의 입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엄마도 이런 상담을 받았더라면, 엄마도 도움을 받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부질없었고, 나를 더욱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던 상담 선생님은 어느 날 이런 말을 하셨다.


"ㅇㅇ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짠해요.. 엄마도 이해하고, 아빠도 이해하고, 언니도 동생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제는 ㅇㅇ씨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한테 어떤 마음이 들어요?"


"엄마가.. 미운 것 같아요. 원망스러워요"


맞다. 나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는 마지막에 자기는 이제 우리한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언니와 동생이야 상황상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랑 가까이 살며 엄마랑 자주 보고 싶어 하고, 놀러도 가고 싶어 했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아직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이제야 엄마한테 투정도, 응석도 부려볼 수 있겠다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지 배신감도 들었다. 엄마 자기만 생각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나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살'이 다른 죽음보다 감당하기 힘든 것은 


남은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먼저 간 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해주고 싶은 것이다.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살 유가족들은 정말 이도 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상황을 혼란스러워하고 결국엔 회피하게 된다. 감당하기엔 너무 큰 상실의 아픔이기에..


너무 큰 상처와 아픔이 남았지만, 내가 지금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일단은 엄마의 사랑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를 사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엄마는 너무 아파서 병으로 인해 죽은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선 엄마는 우리를 두고 갈 수가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둘째 딸이 어디 갈 적에 잠깐이라도 연락이 안 되면 가슴 부여잡고 걱정하는 사람..

몸이 약한 언니를 안타까워하고 항상 걱정하던 사람.. 막내아들 키 안 클까 걱정되어 이것저것 좋은 것 찾아다 달여 먹이던 사람..


어린 시절 우리를 떼어놓고 나가버렸던 엄마.. 하지만 그 당시 아빠는 엄마를 지켜줄 수가 없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한평생 그걸 마음 아파했겠지.. 물론 어린 우리들에겐 상처가 되는 상황들이었지만 말이다.


엄마의 장례 첫째 날 쪽잠에 꾼 꿈에,  그러니까 엄마가 죽고 나서 처음으로 꿨던 꿈에 엄마가 나와서 했던 말이 있다


“너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 너네를 두고 떠나지않고 꼭 지켜줄게.. “


아마 우리를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 우리도 엄마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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