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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다이어터 Jun 09. 2021

아버지의 소천 (2020.12.26.)

아버지 001

2020년 12월 26일 토요일,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소리내며 우시는 소리만 났습니다. 무슨일이 생겼다는걸 직감 했습니다. "아빠가 가셨다....." 어머니는 겨우 이 말씀을 하시고 다시 우시기만 했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다니......73세의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임종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추억을 생각날때마다 쓰려고 합니다. 일단, 장례식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기록한 글입니다. (2020년 12월 31일 자정에 기록)    


0. 사실 아직도 꿈만 같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 나겠지만, 2021년 새해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막 적어봅니다. 쓰다보면 제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길듯 해서요.


1. 그땐 많이들 그랬지만, 저희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았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아버지와 놀러 간다거나, 외식을 했던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같이 찍은 사진도 별로 없습니다. 커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했네요. 후회가 됩니다.


2. 그 와중에 뜬금없이 아버지가 처음으로 끓여줬던 라면이 기억납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1987년 5월 어느날, 할머니와 엄마가 마산 돝섬으로 놀러 가시고, 난생처음 아버지가 4남매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희집이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일곱식구가 라면 2개에 국수면을 넣어서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라면은 당시 제일싼 쇠고기라면(100원)이었죠. 그런데 이날은 아버지가 동네 구판장에서 안성탕면(120원)을 5개나 사오셨답니다. 난생 처음으로 1인 1봉 라면, 아버지가 끓여주신 라면을 먹었죠.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라면을 끓여주신 날입니다.


3. 아버지는 20살이 조금 넘었을때 아버지(저의 할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40대 홀어머니(저의 할머니)와 먹고 살기 위해 저희 어머니의 고향마을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고향 마을은 저희 어머니의 고향마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에서 만나서 결혼하셨습니다. 결혼 당시에 어머니 친정의 극심한 반대로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거지한테 시집가면 굶어죽는다구요. 실제로 두분이 참 힘들게 사셨습니다. 


4. 아버지는 중졸이십니다. 공부를 잘 하셨으나,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안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지역사회 대외활동도 엄청 하셨습니다. 아마 학교 공부를 더 하셨고, 도시에 사셨다면 큰 일 하셨을 것입니다. 기록, 수집,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글도 제법 잘 쓰셨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들 몇가지는 아버지의 영향입니다.


5. 아버지는 몇해 전부터 치매 증세가 조금 있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기억은 잊어가는데, 매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입관하면서 뵌 아버지의 얼굴을 평온해 보였습니다.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6. 아버지와 어머니는 올해 코로나 가운데서도 데이트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모습입니다. 치킨 한 마리 사서 드라이브 하다가, 경치 좋은 곳에 차 세우고 수다 떨면서 치킨을 드셨답니다. 맛집 찾아 다니는것도 좋아하셔서,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 돌아가시는 날도 데이트 날이었습니다. 오전에 목욕하고, 점심에 동태탕 맛집을 예약하고, 오후에 드라이브 계획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목욕하시다가 심근경색이 오셔서 임종도 못보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마 당분간 동태탕을 못드실 듯 합니다.


7. 아버지는 생전에 시신기증을 원하셨습니다. 아쉽게도, 당일에 시간이 지체되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화장하여, 아버지의 일터인 감나무 밭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한 감나무 아래에 묻었습니다. 몇 해 전, 농사를 은퇴하셔서, 감나무 밭은 황량하고, 감나무는 메마른 상태입니다. 어렸을 때 가을마다 감 따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추억입니다.


8.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변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평소와 좀 다르셨습니다. 최근에 아버지의 옷, 속옷, 양말, 신발을 엄청 사셨답니다. 지난달에 휴대폰도 새로 하셨습니다. 어제 어머니가 그 얘기를 하시면서 많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새로 산건 모두 저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체형이 같습니다. 어머니가 새 제품을 보면 아버지를 계속 생각할 것 같아서 전부 다 챙겼습니다. 당분간 아버지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지도 모릅니다.


9. 2020년은 정말 잊지 못할 해입니다. 생각하니 눈물이 좀 납니다. 그러나 잘 이겨낼 것이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다시 즐겁게 생활할 것입니다. 2020년의 마지막 글을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생각으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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