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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종규 Feb 15. 2023

[8] 다시, 끝나지 않도록.

순환경제 - 재사용

직업상 소비재 제품과 자주 얽히다 보니 제품 포장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막상 LCA를 진행해 보면 포장의 배출량은 제품 전체의 배출량에 비해 매우 적은 비율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추측건대 화장품 종이상자의 재질보다는 제품 원료를 바꾸는 게 환경영향 측면에서는 더 눈에 띄는 변화일 것이다. 그래서 배출량을 줄이는 목적이라면 포장이 아니라 제품부터 바꿔야 한다는 답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아쉽게도 그 대답 이후로 대화가 잘 이어진 적은 아직 없었다.


2020년, EMF는 Upstream Innovation 책자를 발표했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Downstream에도 혁신이 필요하듯이,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Upstream에도 혁신이 필요한 점을 강조하며 시작하는 이 책자에서는 아래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하며 112가지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1. Elimination 포장을 없애기

a. Direct elimination 핵심기능이 없는 불필요한 포장을 없애기 계산대에서 바코드만 찍으면 되는데 하나 사면 하나를 더 주기 위해 꼭 비닐로 상품을 묶어둘 필요가 없고, 유리병뚜껑은 압축해서 닫혀있다면 비닐로 또 한 번 포장할 필요는 없다. 월마트, 테스코, 록시땅, 네슬레 등이 실천을 확장하는 중이다.

b. Innovative elimination 꼭 필요한 포장이라면 혁신으로 개선하기 묶어 팔기를 포기 못하는 칼스버그 맥주는 적당한 접착제로 캔끼리 서로 붙이는 방법으로 기존의 고리형 플라스틱 포장을 없앴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충전기의 재질을 유광에서 무광으로 변경하여 비닐포장을 한 단계 건너뛰었다. 또한 먹을 수 있는 물 주머니, 과일을 오래 보관하는 식용재질 코팅, 고체형태로 만든 샴푸나 치약 사례 역시 포장의 혁신이다.


2. Reuse 다시 쓰기

a. Business to consumer 소비자의 다시 쓰기

Refill at home 포장 없이 집에서 리필
탄산음료를 만들어 먹는 SodaStream, 알약 같은 모양의 고체압축 세제를 사서 물에 희석해 사용하는 Everdrop이나 화장품의 겉유리병은 계속 쓰면서 속포장만 살 수 있는 입생로랑의 크림 제품 등의 사례가 있다.

Return from home 다회용 포장을 돌려보내기
배달시켜 먹고 난 그릇을 되찾아가는 방식으로 익숙하기도 한 이 방식은 제품을 사용하고 남은 다회용 포장재를 기업에 돌려보내서 또 쓰도록 하는 방법이다. 케첩부터 세제까지 500가지의 다양한 실생활 상품으로 시작한 다회용기 회수 Loop 프로젝트는 영미권을 넘어 독일, 프랑스, 호주 그리고 일본까지 확장 중이다. 

Return on the go 다회용 포장을 매장에 돌려주기
도서관 책 대여하고 반납하듯이 다회용 포장을 소비자가 직접 매장이나 수거장소에 직접 돌려주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유리병 보증금 제도, 남미에서 코카콜라가 하고 있는 PET병 재사용 프로젝트, 도시 곳곳에 생기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컵 공유 서비스 등이 사례에 해당된다.

             Refill on the go 포장 없이 매장에서 리필
매장에서는 대용량 제품을 진열하고 중량 단위로 포장 없이 판매하면 소비자가 다회용기에 담아 가는 방식으로 네슬레가 스타트업 Miwa와 같이 반려동물 사료 등으로, 유니레버는 Algramo와 함께 세제류로 실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b. Business to business 기업도 다시 쓰기
무역이나 유통과정에서 버려지는 포장도 많이 있다. 지게차 운반이 편하도록 사용하는 팔레트 중에 나무로 된 것들은 보통 도착지에서 버려진다. CHEP은 작고 튼튼하며 적재가 용이한 팔레트를 디자인해서 회수하는 시스템을 60여 개 국가에서 운영 중이다. 스웨덴에는 1500개의 사업체가 협력하여 쓰고 있는 운반상자 공유 시스템이 있는데, 스웨덴에서 판매되는 신선제품의 50%를 이 표준화된 상자로 나르고 있다고 한다.


3. Material circulation 자원 순환
아무리 노력해도 버려지는 포장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겨진 자원의 순환이 쉽도록 하는 디자인 혁신이 필요하다.

a. Plastics recycling 플라스틱 재활용
탄산음료의 병 색깔을 투명하게 바꾸는 등 플라스틱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염료 사용을 줄이는 데부터 시작할 수 있다.
국가마다 PCR (Post consumer recycled) 플라스틱을 식품용기로 다시 쓸 수 있는지 규정이 다르지만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Waitrose에서는 여러 색깔의 식품 받침용기를 볼 수 있는데,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현상이다.

b. Plastics composting 플라스틱 퇴비화
플라스틱의 생분해를 무턱대고 좋은 해결책으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적재적소에서 관리를 잘하며 PLA소재 식품용기를 사용하는 사례는 이미 많이 상용화되었다. 필수 조건은 대규모 퇴비화 시설이다. 기존에 음식물이나 정원의 유기폐기물을 처리하던 퇴비화 조건이 PLA를 함께 처리하기에도 맞아떨어지게 보유한 시설이 인근에 위치한 지역에서 적용할 방법이다.
c. Substitution to a non-plastic material 플라스틱의 대체 소재
배송상자의 완충재, 가벼운 식품의 포장 등을 종이로 대체하는 등 플라스틱보다는 비교적 재활용이 수월하다고 알려진 알루미늄 캔이나 종이로 포장재질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벌집 모양을 활용하는 등 디자인 아이디어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EMF에서는 위 세 가지 전략 중에 재사용에 대해 더욱 집중하여 홍보했다. 재사용 솔루션의 이점으로 포장과 운반 비용 절감, 브랜드 충성도, 개인화 수요 충족, 사용자 경험 향상, 운영 효율성 증대, 소비자 정보 수집 등을 꼽았다.

2019년에 69가지의 비즈니스 사례를 모은 Reuse - Rethinking Packaging 자료를 EMF에서 공개한 바 있다. 이 자료를 여는 말은 ‘지금은 재사용의 시대’이다. 패키징의 혁신은 플라스틱의 폐기와 오염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실가스와 부정적인 외부요인을 많이 줄일 수도 있는데 이런 환경오염 맥락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의 기회로서도 매력 있는 영역이다. 전 세계의 관심이 플라스틱 오염에 쏠려있는 와중에 소비자의 취향은 바뀌고 있는 2020년이야 말로 비즈니스 기회의 순간이라고 한다.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맞았다는 생각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주춤해지는 듯하였던 다회용기 솔루션이 세계 곳곳에서 다시 자리 잡아가고 한국에도 다회용 컵이 카페에 등장했다. 일회용 포장의 폐기와 오염을 없애며, 포장자원을 순환할 수 있는 재사용 솔루션이 주변 동네에 생기는 것이 반갑다.



내게 찾아올지 모를 기후우울증의 예방차원에서 순환 경제의 적용 사례를 훑어보며 내 깜냥으로 도움이 될 만한 곳은 소비재의 재사용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에게 닥친 문제는 많고 복합적인지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하나씩, 제대로 모두가 각자 맡은 바를 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내 역할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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