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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Jan 26. 2023

카페에서 쓰는 글 ep.1

첫 번째 추억

 그 남자애와 헤어지고 나서 같은 모둠이 되었다. 어쩌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살짝의 기대감이 섞인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을 때 어쩐지 나보다 그 애가 더 기분이 나빠보였다. 내가 그 모둠에 앉아있을 때면 걔는 수업 시간 이외에 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적이 없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화날 만도 하지만 가끔씩 겉으로 드러내는 그 애의 차가운 불편함에 괜시리 서운했다. 내가 나쁜 애지 뭐.. 그치만, 같은 모둠이 되고 나서는 등교할 때 입고 갈 옷이 전보다 더 신경 쓰였다. 나보단 그 아이가 반 친구들이랑 더 활발하게 어울렸기 때문에 조용한 편이었던 나는 걔한테 더욱 시선이 갔다. 간혹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면 내가 뭘 실수한 게 있을까 고민했다. 수줍고 애정 있는 시선을 주던 애가 돌변해서 쌀쌀맞은 눈을 하고 나와 마주칠 때면 또다시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더 신경 쓰였다. 그 뒤로도 항상 그랬다.

 막상 사귈 때는 설레다가도 설레지 않는 감정에 이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헤어지고 나서 아무 사이도 아닐 때 마주치거나 같은 장소에 있게 되면 긴장되고 신경이 쓰였다. 왠지 더 멋있어 보이고 다시 사귀고 싶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몇 번의 헤어짐과 사귐을 반복했다.

 불안정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던 나날이 펼쳐졌던 남자애와 여자애가 스무 살에 다시 만났다. 내 싸이월드 방명록에 그 애가 내 안부를 묻는 글을 썼다. 다이나믹 듀오의 ‘자니’를 연상캐하는 시간대에 게시가 된 걸 보고는 얘도 다른 남자들처럼 새벽에 전 여친들한테 연락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가벼운 연락일까 불안했지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스무 살 가을이 지날 무렵에 사람이 미어터졌던 강남역 한복판에 있는 지오다노 앞에서 다시 만났다. 겨우 골몰하고 신경 써서 데이트룩을 입은 내 모습은 갈색 머리를 한 사파리 직원 같았고 반면 그 남자애는 단정한 차림이었는데 한 동안 만나지 못했음에도 걘 그대로였다. 살짝 커진 몸집에 약간씩 뚝딱거리는 행동을 했고 웃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챙겨주는 다정함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때쯤이면 당시 꽤나 발랄한 척을 하고 다니던 나는 잦은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애는 나를 의심하지 않고 대했다. 내가 어떤 과거를 지내왔는지, 나름 자신보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과연 사실인지 동태를 파악하려는 느낌이 아니었다.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말들에 살짝씩 불편해지는 순간이 생기는데 그 아이와 대화할 때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혹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굉장히 시끄럽고 주황색 불빛이 심해서 광대가 도드라져 보였던 ‘와라와라’ 술집이었다. 이름 때문인지 그 당시엔 굉장히 인기 있던 추억의 술집인데 지금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의 나는 시끄럽고 사람 많은 술집이나 클럽에서 술을 먹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아주 신이 난 상태였다. 그 아이는 오랜만에 설레는 첫 만남으로 있기엔 너무 소란스러운 장소가 아닌가 하는 눈빛을 풍겼지만 이내 나의 신난 모습을 보고는 한 풀 꺾어 배려를 해주었다. 안주가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빨갛고 뜨거운 국물이었다. 썸남으로서의 매너를 발휘하며 내 앞 접시에 음식을 퍼줄 때는 미세하게 손을 떨었고 그릇을 잡고 있는 손에 매번 국물이 닿았지만 걘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애는 지금도, 능숙하게 내게 먼저 국을 퍼주고 있다. 미러링 효과에 의한 장족의 발전으로 ‘따뜻함이라는  깨달은 나도 이제는  애한테 국을 먼저 퍼줄 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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