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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Mar 27. 2023

내가 나를 지키는 법

일단 채우고, 배우자

 질병휴직을 하면 수령하는 월급이 큰 폭으로 줄어들어서 쓸 수 있는 생활비가 감소한다. 수입이 줄어드니 가족 내에서의 입지가 약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돈을 쓸 일만 있지 재테크를 제외하고는 수입원이 없다. 남들이 다 일하고 있을 때 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마치 무단결근하는 느낌이 들면서 할 일 없는 백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학교에서 맡았던 업무들을 내가 해내지 않아도 학교는 잘만 돌아간다. 교사가 질병휴직을 하게 되면 해외를 나갈 수도 없고 당연히 겸직도 불가능하니까 무작정 건강을 회복하고 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으니 주변에서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도 느껴진다. 이런 전반의 상황들은 나의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을 떨어지게 만들만한 조건들이다.

 더불어 가족, 주변 지인들을 포함한 세상과 싸워 이겨내야 한다. 한참 마음이 힘들었을 때는 주변 반응에 심각하게 예민했었다. 내가 그만두지 않길 바라는 동료 교사 혹은 가족들도 있고, 반대로 내가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 이 세상이 얼마나 지옥인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지 느껴보라, 후회할 거다라는 식의 은근한 저주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오래 쉴 수 있어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속뜻에는 ‘교사 아니면 그렇게 휴직할 수도 없어. 퇴근도 빠르고 사기업보다 덜 힘들 텐데 뭐가 힘들어서 휴직까지 할까. 그런 교사직을 그만둔다니?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 배부른 소리야. 밖은 지옥이야’라고 해석했다. 내가 꼬였던 것도 맞지만 사실 알고 보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이다. 나마저도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말들을 듣고 아, 그냥 내 욕심 다 포기하고 교사 일을 계속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기운 빠지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문득 언제는 그 말들에 납득도 안 되고 그 주장의 근거도 불분명하다 생각해 사람들과 휴직, 퇴사 관련된 주제를 일체 말하기 싫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 관심이 더 크니까 당연히 내게 물어보게 될 텐데, 그냥 내게 호기심이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길 바랐다. 요즘은 어떠냐는 말을 들으면 그게 정말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직 우울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넘겨 짓듯 판별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방어할 힘도 없었고 나를 지켜낼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타인들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릴까봐 걱정했고 두려웠다.




 심리 상담을 시작한 후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상담사에게 기분이 묘하게 안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장기 여행을 간다고 상담을 잠시 중지해야겠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내 스스로 감정과 생각을 통제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굉장히 잘 들어주고 어느 누구보다 크게 리액션을 해주던 사람이 살짝쿵 눈빛이 바뀌면서 그만두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엄마가 그만두라고 했냐. 당신은 아직 그럴만한 정신상태가 아니라면서 왜 혼자 해보려 그러냐며 약간 나무랐다. 이상했다. 진정한 상담가라면,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면 내담자가 혼자 독립해 보겠다고 용기를 냈을 때 응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힘들면 다시 돌아올텐데. 어떤 일이든 돈을 떠나 일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이렇게 돌변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그 날 나보고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했을 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없는 만큼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상담사가 말한다. 교사 일이 그런 일이 아니냐고.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되는 거 아니냐며 목표가 모호하다고 혼냈다. 목표는 커도 되고 작아도 되고 모호해도 되는데 이게 이 사람한테 혼나야 할 일인가. 평소 다독거리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내모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해요. 그래도 덕분에 부모의 육아 방식, 내담자의 유년 시절이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았습니다.




 요가를 시작하고 체력과 몸매를 다지면서 근육에 점점 더 힘이 생겼다. 여유 시간이 많기에 각종 책을 섭렵, 다독을 통해 나만의 컴플렉스를 극복해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일부러 하기 시작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고 독서를 통해 생각의 힘을 길렀다. 이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시간이 약이었고 불행의 터널에는 끝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고 내가 진심으로 잘 성장하게끔 북돋아 주는 사람은 누구인 것 같나? 그건 바로 내 자신이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나만큼 나를 아끼고 잘 되게끔 머리채 잡고 발전시키는 사람은 없다.

 나를 보호할 힘이 생기면서부터는 관심이 타인에게 흘렀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공부했다. 심리학 관련 도서로 공부를 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본능적인 욕구부터 시작해 유아기 혹은 청소년의 행동 양식, 각종 악행의 이유, 사기꾼의 패턴, 사이코패스들의 심리 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는 이해가지 않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투성이었으나 내 식견이 짧아 그들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원인도 모르고 분노만 해댔다. 세상엔 각종 결핍, 우월감, 확인 편향 등의 이유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심리가 형성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고 상황에 적용하려면 아직 갈길이 멀긴 하다. <씽킹101> 저자 예일대 심리학 교수가 말하기를 본인이라고 상대방을 점치듯 완벽히 파악할 순 없다고 했다. 여하튼 공부를 하고 나니 오히려 사람들이 미워 보이지 않고 마음이 편해졌다. 불편한 사람을 대할 경우 그 사람을 욕하고 끝날 게 아니라, 상대방의 가장 큰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해 나에게 유리하게, 바람직하게 상황이 흘러가도록 처세할 수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이런 능력이 개발되려면 공부하고 실전에 적용해서 테스트하는 수밖에.




 나에게 없는 상대방의 부러운 점을 발견했을 때 어떠한 감정이 드는가. 상대의 약점을 애써 발견해 질투심을 상쇄시키고 싶은가? 나의 강점을 드러내 타인의 부러운 점을 꾹꾹 눌러내려 하는가? 자신이 가진 조건을 비하하며 마치 욕심 없는 듯, 다 포기한 무소유의 사람처럼 보이려 하진 않는가?

 우리는 보통 친한 지인과 더블데이트, 부부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은연중에 서로를 비교하는 일이 많다. 신나게 놀다가도 집에 와서 뭔가 모를 찜찜함이 남아있는 경우,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얼마 전 친한 지인 부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모임이 있기 전에 책을 읽으며 마인드 세팅을 했다. 그 부부에게서 배울만한 언행을 주로 보고, 내가 그 부부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사업적 조언, 육아 조언을 열린 마음으로 듣자는 각오를 속으로 하고 갔다.  

 사실 그 커플은 결혼하기 전까지 연애에 있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누가 봐도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리는 형국이어서 무사히 결혼을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었다. 여자가 참으로 아쉬울 거 없고 참하니 너무 괜찮은데 왜 결혼이 부담스럽다는 터프한 남자에게 그렇게까지 매달릴까 싶었다. 당시 나와 남편은 연애 기간이 길어서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였고 남편이 그 남자 지인보다 섬세한 성격이어서 함께 만나면 살짝 상반된 분위기였다. 커플 사이로만 따지면 나는 부러울 게 없긴 했다.

 그러나 여자는 나보다 키도 크고 자세가 바르며 아주 예뻤고 말도 상냥하게 한다. 우리보다 결혼을 늦게 했지만 아이를 나보다 일찍 낳아서 씩씩하게 잘 기르고 있고 살고 있는 집도 깔끔하고 예뻤다. 남자는 사업을 물려받아 잘 운영해가고 있어 벌이가 우리보다 클 것이다. 지금 이런저런 거 따지다 보니, 골라내다 보면 그 부부에게 부러운 점들이 무수히 많을 수 있겠다 싶다.

 이번 만남에서는 부러운 점, 그로 인해 불편해지는 상대방의 언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배울만한 마인드, 행동에 포커스를 맞췄다. 남자는 식당에 갔을 때 무리를 대표해 용기 있게 요구 사항을 이야기해 준다. 멀리서 방문해 준 우리를 위해 베푸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다들 지쳐 말수가 없어진 순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우리 부부에게 궁금한 점을 번갈아가며 질문을 해준다. 여자는 식사를 하든 몸을 움직이든 간에 항상 급하지 않고 차분했다. 자세를 바르게 했고 항상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땐 목소리를 크게 내어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고 나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말을 하기보다 경청하는 데 집중하고 공감해 주었다.

 지금까지 그 부부를 만나 놀았던 경우 중에 이번 만남이 제일 뿌듯했고 기분이 좋았다. 원래 코드가 잘 맞는 것도 있겠으나 서로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 재미를 위한 자기 자랑과 자기 비하의 적절한 비율, 서로 배울 점이 있다는 전제하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만나다 보니 안정적인 대화가 되었다. 옛날의 나 같았으면 불편했을 순간들이 한 두개는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상대의 배울 점만 쏙쏙 빼내서 나에게 어떻게 적용시킬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부정적인 것들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은 상대로부터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자신 또한 상대방을 존중해 줌으로써 스스로가 조금 더 젠틀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우월감이다. 누구 하나 피해 입지 않는 평화로운 만남의 과정, 결과를 낳는다. (예외적으로 사기꾼, 사이코패스, 자기도취자는 알아서 걸러내고 거리를 두자. 우리에겐 그 정도 능력은 있다.)




 이제 내 기분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내맡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혼자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심리학 도서 <씽킹101>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머릿속에는 언제나 수많은 생각이 뷔페의 음식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러므로 생각나는 대로 마구 생각이나 끄집어내기보다는 그중에서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것을 무시할지 선택해야 한다. 부정적 생각에 빠져드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면 그 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도움 받아야 한다.
<씽킹101>,안우경

 사람들은 깊게 고민하고 말하는 사람보다 별생각 없이 툭툭 말을 뱉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들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것을 방치하지 말자. 그런 말들을 듣는 순간이 오더라도 즉시 논쟁하지 말고 잠시 멈추고 생각해라.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생각을 선택해라. 나에게 바람직한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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