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희망이 있긴 한걸까
누군가는 목소리 내야만 하는 일
어떤 분야든 너무 많은 걸 알면 회의적이게 된다.
요즘 언급되는 가슴 아픈 기사를 보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사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비상식적인 학부모들의 민원 내용과 태도들은
교사라면 비슷하게 겪어본, 늘 상 있던 일이다.
어떤 교사가 나에게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라고 우쭐대다간 큰코다친다.
내 앞자리, 옆자리, 옆 학교 선생님에게 일어나는 일은 분명히 언젠가 나에게도 펼쳐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어떤 학생, 학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담임교사의 한 해가 달려있다.
담임이 짊어져야 하는 과도한 책임을 덜어줄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늘 상 일어나는 일이 될 것이다.
몰상식한 학부모들의 민원 내용을 이제야 좀 자주 접해보신 분들은
어떻게 그런 반응을 할 수 있냐며 당황하실 거다.
사실 서초구가 민원이 난이도 극상이라 힘든 건 맞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서 안 그러냐? 절대 아니다.
수도권이든 지방 선생님이든 이제 그런 민원 내용들에 대해 이제 놀랍지도 않을 거다.
이미 익숙해져서.
지방 깡시골부터 수도권까지 두루 경험해 본 바다.
이렇게 될 때까지 손 놓고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미뤄둔 윗선들의 무능함이 빛을 발한다.
학교에서 잠시 떨어져 제3자의 입장으로 요즘 교사들의 위치가 어디쯤일까를 생각해 봤다.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 가장 앞 단에 위치시켜 놓는 병사들
화살과 총을 흠씬 뚜드려 맞아도 ‘어쩔 수 없는 역할’의 ‘방패막’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불어 대부분의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과 사명감을 ‘이용’하고
혹여 무슨 사건이라도 생기면 그 즉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든다.
이게 어떻게 교사 개인의 문제인가.
선생님들이 학교폭력, 생활지도 연수를 열심히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거란 발상,
투 폰을 써서 일과 이후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냐는 발상,
임용 시험 과정에 생활지도 역량을 다시금 체크하자는 발상,
선생님이 강한 멘탈을 가지고 강하게 대응하면 되지 않냐는 발상,
기가 차다.
다시 한번 놀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윗선의 대처들.
그저 꾹꾹 누르고 덮기에 급급한 모습.
공무원 특히 학교 사회는 워낙 이해관계들이 많이 얽혀있기에
대부분 어떤 사건이 터지면 현재 상황처럼 비슷한 식으로 흘러간다.
교육청, 관리자, 학부모, 학생의 이해관계가 얼기설기
여기서 교사는 항상 뒷전
내가 저경력일 때도 학급에 사건이 있어서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괴로웠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교권이 이만큼 떨어졌을 땐 아니라서
수많은 학부모들이 나에 대한 민원과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은근 내 눈치도 보고 했다.
나름 저경력 안타까워하는 눈빛도 있었고. 나를 끝까지 벼랑으로 내모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안타까워하며 선배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보호도 해줘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그분들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분들을 뵈면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연락을 드릴 수가 없다.
그 당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저경력이라 스스로
‘아, 교사 일을 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구나. 너무 무섭다.’
그러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견딜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한 금쪽이 학생으로 인해 1대 29, 그리고 1의 학부모까지 포함한 그 사이에서
혹여라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고자
여기서 수습하고 저기서 수습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그 한 명의 학생에게 시달려서 나 혼자 줄타기를 했던 한 해였는데
정말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버텼나 싶다.
처음으로 심리 상담받고 약 타러 정신과 간 게 당연하다 싶었을 정도로.
문제가 되는 학생을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
내가 살면서 가장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남편도
혹시 학부모 때문에 문제 생기면 나도 너 보호자라며
학교 찾아가거나 그 학부모한테 난리 치겠다고 함께 분노하곤 했었다.
정말 고마웠었다.
보통 학급 일은 담임교사-학년 부장-교감-교장 순으로 업무가 보고 되는데
누구 선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담임 선에서 해결하라 하면
묵묵한 내 성격상 그냥 수긍하고 내 선에서 최대한 해결하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닌데 왜 이 아이의 정신적 치료까지 해줘야 하나 싶고
어디다 솔직하게 토로할 사람도 없고(경기도 전입 1년차라 이렇다 할 친한 사람은 못 만든 상태)
나 혼자는 힘들고 죽겠어서 교감 선생님께 수시로 보고드렸고
교감샘과 함께 금쪽이를 지켜보며 겨우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
사실 중간 과정 다 스킵하고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면
바로바로 교감 선생님께 나서서 보고를 드린 것도
교감샘이 잘 받아주시는 분이라 할 수 있었지, 그러지 않는 분이시면 답도 없다.
내가 작년에 가장 감사했던 분이 그 교감 선생님이다.
그분의 말이 진심이었든 아니든 별로 상관이 없다.
작년 한 해 나의 힘든 부분을 이해해 주시는 말씀들을 해주신 것.
힘들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 와서 쉬라고 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청소년기에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것은
가정교육이든 학교 현장 교육이든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우리 사는 현실의 문제이고 앞으로의 미래 사회를 책임지는 문제다.
과거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내 현재 인성과 성격이 만들어지며
미래에 내 자식이 겪게 될 교육 현장의 이슈다. (이 이유로 요즘 내가 더 분노하는 것도 있다)
이해관계를 따지고 굽신거리고 그저 그저 수습하느라 본질과 목표를 잃어버린 학교 환경
교사를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본인 짊어질 책임과 가정교육을 떠미는 학부모의 그릇되고 모순된 교육 방식
옳고 그름에 대한 교육적 감화가 불가능한 학생들
힘 없이 여기저기 치여 감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위축되는 선생님들
그로 인해 불편과 어려움을 겪게 되는 반대편의 죄 없는 학생들
현장에서 7년 동안 겪은 일들, 내 미래 아이에게 펼쳐질 교육적 이슈와 고민들을 찬찬히 살펴봤을 때
나의 경력과 고민들을 살려 어떤 입장,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공교육 현장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었고
청소년 관련 교육 업계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뒤도 안 돌아보고 털어버리려 했으나
내가 아직까지 이렇게 분노에 차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나 싶었다.
아직 털어내지 못한 게 있는 듯하다.
내가 종종 생각하는 바는 내 능력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것.
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좋은 영향을 주기에는
무력감도 많이 느끼고 현장 시스템에 정나미가 떨어져 마음이 떠났다.
또 어디에 정을 붙여야 할까.
내가 도덕적, 본질적으로 옳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 주장하고 싶어 뒤에서 미치는 성격이다.
그릇된 걸 바로잡고 싶어 하는 성향.
타인이 보기에 조금 피곤하고 안타까울 수 있겠다만, 내가 그런 걸 어떡해. 잘못도 아니고.
지금까진 이런 성향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도 눈치 보고
불편해할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집에서만 분노하고 밖에서는 숨기고 살아온 본능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거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고 시간도 여유도 없기에
교육적 이슈에 문제의식을 깊게 가지기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깊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도 맞다.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임과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역할이 있겠지 싶다.
어플, 혹은 책을 집필한다거나 개인 사업을 한다든지 시위운동에 나설 것도 아니다.
뭔가 아직은 이르고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 싶다.
좀 더 욕심을 내서라도, 교육적 이슈에 약간의 희망을 찾아가 보기 위해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싶다.
정말 한국에서 도피해 해외에서 내 아이를 교육을 시키는 것만이 답일까.
그러지 않고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바래본다.
아이를 가지게 되고 출산한 이후에는 대학원에 지원해 볼 생각이다.
대학원 생각 1도 없었는데 역시 인생은 한 치 앞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