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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Aug 27. 2022

교사가 된 이유

교사가 되기까지 힘든 1년의 시간을 버텼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단 기간에 교사가 된 것이기 때문에 모두의 부러움을 샀고 그게 내 자부심이기도 했다. 교사가 되려는 마음을 먹기까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미대를 졸업할 때쯤 나 스스로 앞 날을 결정했다. 고시 준비를 하기 위해 열의에 차 있던 나를 빼고는 가족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지만 그래도 말로는 다들 응원해줬다. 미대를 나와 교직이수 과정을 거친 이상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직업은 미술 교사라고 생각했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임용고시라는 가늠도 안 되는 큰 벽을 넘어야 했지만 그 벽이 얼마나 높은 지는 내 관심 밖이었다. 나는 성공을 해야 했고 효도를 해야 했다. 또한 그렇게 입학하고 싶던, 그리고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던 인 서울 상위권 대학교, 내 흑역사를 알고 있는 대학 사람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나는 결국 임용에 성공을 했다.   


24살의 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단호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대부분 공부하는 데 시간을 썼기 때문에 친구들이랑도 자연히 안 만났고 하루 종일 임용 공부 생각으로 가득했다. 공부 장소도 남달랐다. 고시생들을 보면 보통 본가에서 공부할 생각을 못하는데 독서실을 1년 끊자니 독서실 비용에 식사 비용까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집 안방은 큰 편이라서 기존에 쓰던 버리기 아까운 6인 식탁이 자리했는데 거기서 자리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남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한테 맞는 공부 장소에서 하는 게 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공부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고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대뜸 먹었는지 그 대담함이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보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시간을 들이고 집중을 하는 만큼 성과가 나왔다. 스터디를 할 때는 스터디원들이 마치 자신들이 강사가 아는 것보다 많은 듯 강사를 의심하고 욕하는 것을 자주 봤는데 그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초수생이었고 항상 겸손해야 했으며 강사의 강의 내용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나보단 강사의 내공이 훨씬 컸기에 강사를 믿고 따라갔다.

내가 고시생 때 했던 고민, 받았던 스트레스는 주로 2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에 12시간 공부를 했다는데 나는 8시간밖에 못했어!라는 종류의 불안. 그리고 학원비, 특강비를 내야 할 때마다 엄마에게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씀드릴 때였다.

딴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고 내 속도대로 따라가다 보면 성과가 나오겠지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때엔 있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당찬 내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잃을 게 없었던 과거보다 잃을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 현재라서 그런지 새로운 환경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게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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