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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Sep 25. 2022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심리상담을 알아보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내 부족한 점들

 글을 쓰다 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부족한 면들이 부각되어 보였다. 여기저기 구멍 뻥뻥 뚫려 온전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역사나 경제 공부를 할 때 그렇듯 미래 전망을 예측해보기 위해서 과거의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앞날을 설계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기 위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내 장점, 단점이나 흥미, 관심사를 파악하고자 했다. 거의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그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을 할 때마다 매번 글을 써서 업로드를 할 수 없었다. 1분도 쉬지 않고 계속 생각했으니까.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아니 심지어 일을 하는 와중에도 몇 초도 쉬지 않고 불현듯 떠오르는 못마땅한 내 부족한 점, 미래에 대한 걱정과 생각들은 두서없이 난잡하게 계속해서 떠올랐고 아무리 오래 고민한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결론은 항상 ‘나는 왜 이거밖에 안되지?’, ‘왜 이 정도로 밖에 생각을 못하지?’, ‘내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지?’ 등등의 결론 나지 않는 물음표로 끝났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속에 잠식되어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우울감에 휩싸였고 현실 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불가능했다.

 

 어릴 적부터 내 모습을 쭉 돌아보니 나는 스스로에게 항상 엄격한 잣대를 세우는 자기 검열이 심했으며 동시에 내 생각, 소신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외부 요인에 흔들려 타인의 눈치를 보고 그에 따라 내 행동을 달리하는 나약한 존재였다. 나이가 들고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특히 학교 일을 할 때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지내왔던 내 자신이 비참했달까. 차라리 관리자나 동료 선생님들 눈치를 봤다면 모르겠는데, 담임일을 할 때마다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의 눈빛, 나를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물론 내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장점 중에 하나는 앞에 닥친 굵직굵직한 미션이나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일 하나에만 몰입하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그런 일들은 잘 해냈다. 하지만 거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건강하게 해소하는 것, 조직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대처하는 데서는 굉장히 부족한 면이 많았다. 걱정이 되거나 불안할 때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로 하소연하고 위로를 받으면 생각이 조금씩 덜어졌고, 내 걱정이 쓸데없고 과도한 해석이라는 피드백을 받고 나면 그제야 조금 안정을 찾아 다시 현실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남편과의 정신적인 독립이 필요해졌다

 이제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남편에게 의지해서는 안 되며 내 스스로 사고방식을 좋은 쪽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다짐을 했다. 독서도 사고방식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일시적인 깨달음을 넘어서서 큰 변화를 모색하고자 상담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남편과는 동창 관계라 어릴 적부터 알던 관계이기도 하고 연애도 8년을 하고 결혼했던 터라 나의 성격, 내가 무슨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가족, 친구들 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남편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각종 감정들을 토로하고 하소연하곤 했다.

 남편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던 나의 대학교 시절은 가장 자존감 낮았을 시기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외모적으로 어려서 가장 예뻤을 시기인 데다 이제 막 열심히 놀기 시작한 때라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다.

  대학교에서는 생각보다 대인관계를 수월하게 하기 어려웠다. 중, 고등학교 때랑 비교해봤을 때 대학교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좌절감을 안겨줬던 대학에서의 대인관계는 나를 스스로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지속적으로 위축이 되었고 나보다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을 동기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팀플을 해내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제출하는 과제마다 하찮다는 듯이 비판하기 바쁜 교수들 또한 내게 큰 상처였다.(물론 나도 열심히 하지 않기도 했다) 서툴고 불안했던 연애 스킬로 좋아했던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으며, 1시간 반 내지 2시간이 걸리는 통학 거리는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학 시절에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수업이 끝나면 내 대학교에 찾아와 같이 도강을 하기도 하고 학식을 먹거나 맛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 내가 발표를 말아먹고 나와서 자괴감에 집에 돌아갈 때 전화로 내 눈물을 다 받아준 것도 남편이었다.

  내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도 남편은 매주 노량진에 찾아와 같이 밥을 먹어주고 카페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평일에 혼자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슬프고 불안한 생각이 들면 전화로 위로를 해주었다. 임용고시에 성공하고 갓 발령받아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군대 훈련기간을 마치고 마치 직업군인처럼 군생활을 할 적이었다. 퇴근하고 나면 매일매일 1시간에서 2시간 이상도 통화를 했다. 연고도 없는 이름도 몰랐던 먼 시골에서 자취를 하면서 굉장히 불안했을 시기에 남편은 나와 전화통화를 해주며 내 마음을 달래주었고 내 갖은 서러움과 슬픔을 들어주었다. 그때 남편은 나의 불안정한 마음을 돌봐주기 위해 상담사를 자처했다. (실제로 남편은 그때 내 고민을 들어주다가 말이 늘어서 지금처럼 달변가가 됐다고 말한다. 참으로 긍정적이다.) 남편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자세는 실제로 내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어릴 때보다 우울해하지 않고 비교적 쾌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보다 남편의 덕이다.


두려움을 고백하고 강해지고자 한다

 요즘 들어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지고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이  잡히는 시점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이 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남편에게 하소연하며 의지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은 만큼 내면도 스스로 더욱 강해져야  필요성을 느꼈으며 동시에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지, 남편이  이상 나로 인해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비용을 들여서라도 나 자신을 파악하고 조금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터득할 수만 있다면 남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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