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9

새내기 부장 시절에 있었던 일

by 우선열

8년 전 그때 나는 새내기 부장이었다.막 부장 진급을 하여 일의 묘미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영업실적이 좋아 회사의 재정은 튼튼했고 영업 지원비도 많아졌을뿐더러 시상금도 많아 실적을 올리기만 하면 두둑한 성과급이 지급되기도 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회사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사장이 호화생활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3대 밖에 없는 외제차를 사들였으며 안내데스크에 앉은 어리고 예쁜 여직원에게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백을 사주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부분 주부사원들이니 웬만한 세상 물정은 알게 마련이고 돈에 따라붙는 사치와 허영쯤은 통과의례 거니 이해할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크게 터졌다. 공짜 해외여행이라는 시상을 걸어 미리 선금 주문을 받았다. 특별히 좋은 물건이라 주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대만족을 줄 수 있는 찾기 힘든 아이템의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승승장구하는 회사였으니 직원들 모두 판매에 매진했고 역대 최고의 매출 실적을 올려 우리 모두는 동남아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회사는 텅 비어 있었다.

우리를 동반하여 해외여행을 다녀온 최상무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 중 회사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최 상무뿐이었다. 몇 군데 연락을 취해 본 최 상무는 사장이 돈을 들고 잠적한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리한 투자로 재고 물건은 창고에 넘쳐나지만 새 상품에 투자할 여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돈은 없지만 창고에 물건이 쌓여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 최 상무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성품이 상냥하고 성실한 최 상무라 평소에 주부 사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일처리도 명쾌했을뿐더러 공명정대하여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었고

큰누나나 이모 같은 주부사원들의 애환도 깊이 공감해주되 가끔 경우 없이 욕심만 내는 주부사원에게는 가차없는 경고를 주기도 했다. 40대의 젊은 상무였지만 건실한 그의 생활태도를 알고 있던 우리들은 그를 믿기로 했다. 우리가 힘들더라도 우리를 믿고 투자한 고객들에게 손해가 가게 할 수는 없다는데 동의한 우리들은 재고 물건 파악에 들어갔다. 유능한 상무는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재고 물건 중 좋은 물건을 찾아 투자한 고객들에게 안배해 나갔다. 직원들은 각자 자기 고객들에게 특혜를 주기를 원했으며 위기를 기회 삼아 폭리를 취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무와 7부장들은 무보수 봉사였지만 불평을 말하거나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까다로운 고객에게까지 별 불만 없이 일이 처리되는 데는 삼 개월 여의 시간이 걸렸다


어려운 영업일로 애써 번 돈이 그동안에 다 탕진되고 말았지만 부장들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마음을 합해준 최 상무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다시 무일푼으로 거친 영업 일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우리들 7공주와 최 상무라는 그때의 일이 영업 세계에서 보람 있는 일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끝나고 말았어야 했는데 서로에게 신뢰가 생긴 우리들은 의기투합 회사를 차려 보기로 결의했다 이 정도의 영업력이라면 꼭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대외적인 일은 상무가 맡고 7부장들이 힘을 합하면 태산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쌈짓돈을 털어 동업을 해보기로 결의했지만 자본이 여의치 않았다

다시 3개월여를 전전긍긍하던 우리는 빚까지 조금씩 떠맡아야 했고 결국 후일을 기약하고 헤어져야 했다.

이제는 은퇴한 친구도 있고 아직도 현역에서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도 있다. 최 상무는 회사를 차려 잘 나가는 CEO로 자리 잡았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가끔 최 상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비어 있는 전무 자리가 아쉽게만 느껴졌다. 이 이사는 같이 일해 본 적이 있는 성실한 차 전무를 영업 총괄로 소개했다


강 부장의 오른팔은 분야씨이다. 강 부장과 동년배이니 70이 훌쩍 넘었다.6.25 전쟁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전후의 참혹한 시대를 살아 내었으니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잠시도 몸을 편하게 쉬는 일이 없이 움직인다

아들딸 잘 자라 제법 탄탄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자신도 작은 건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낼 수 있지만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병이 난다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내 이름이 왜 분야인지 아니? 할아버님이 태몽으로 호랑이 꿈을 꾸고 아들이라고 좋아하셨는데 딸이 태어나니 ' 분햐~ '하셨대, 친정에서는 이렇게 천덕꾸러기였지만 시부모한테는 과분한 사랑받았지, 그 어렵던 시절에 아랫목 따뜻한 곳에 나를 끌어다 앉히던 어머님이 눈에 선해, 똥구멍이 찢어져라 가난했지만 하나도 힘든지 몰랐어. 억척스레 일해서 방앗간 장만했을 때가 제일 좋았지 시어머님이 복덩이 며느리라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

분야씨는 바지런히 몸을 놀리며 사랑받았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장성한 자식들이 그만 쉬라는 말을 할 때마다 서운해진다 자신이 쓸모 없어지고 분한 존재로 남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회사에서도 주변 청소나 휴게실 정리정돈은 분야씨 몫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건만 거친 일은 도맡아서 하곤 한다. 자식들이 해주는 좋은 옷은 깊이 보관하고 입지 못한다. 목 늘어진 셔츠에 무릎 나온 바지가 제일 편하다는 분야씨는, 의사 사위에 아들은 법조계에 입문시켰다. 작은 건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내외의 생활은 풍족하게 할 수 있고

자식들을 위한 저축도 할 수 있지만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하고 싶다는 분야씨는 사실 문맹이다.

출근부에 사인은 X 표,

"눈이 침침하네 잘 안 보여"

휴대폰을 내밀면 어느 누구도 마다지 않고 읽어 준다

" 손가락이 굵어서 자판이 안 눌러져. 5시에 만나 이렇게 문자 좀 넣어줘"

분야씨의 부탁은 아무리 바빠도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말 안 듣는 경우도 있어? 우리 아들 30이 됐길래 너 올해 안에 결혼 안 하면 내쫓는다 했더니

그해 안에 참한 며느릿감 데리고 왔던데" 한다

그러니 영업실적도 항상 상위 수준이다. 까다로운 강 부장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등 영업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