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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Nov 15. 2024

그게 바로 나야

 어젯밤 막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EBS에서 주말 영화  닥터 지바고가 방영되고 있었다

잠시 잠자리에 들 것인가, 영화를 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잠들고 말았다


좋아하는 영화긴 하지만 피곤을 무릎 쓰고 볼 수는 없었다

젊어서는 피곤해서 라는 핑계는 대지 않았다

젊었을 때야 하루 이틀 밤을 새워도 금방 피로가 회복되지만

나이를 인식하면서부터는 피로에서 놓여나는 게 쉽지 않다

하룻밤 잠이 부족한 피로에도 사나흘은 족히 힘들어야 하고

누적된 피로에서 벗어나려면 한동안 고생을 해야 한다.

병든 닭처럼 아무 곳에서나 꼬박꼬박 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말도 똑같다

아니야, 졸지 않았어, 잠시 눈 감은 거지"

젊은 시절처럼 자신의 몸을 잘 컨트롤할 수가 없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앉은 채 코를 골고 있는 일이 다반사이다


좋은 영화가 있더라도 쉽게 일상을 깨지 못하는 이유이다

닥터 지바고 영화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랑을 찾아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일날의 피로를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수는 백가지 일을 해서 백수라 한다

일정한 일은 없지만 공연히 바쁜 게 백수이다

별거 아닌 거지만 주말 스케줄을 방해가 될 것 같아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다

남은 평생 자야 하는 잠인데  조금 덜 자고 닥터 지바고를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신문에서 '그게 바로 당신이니까'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중앙일보 하지원의  '마음 상담소 '코너였다

'과거의 선택에 회한을 가져 결정을 미루는 일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어느 순간이나 우리는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잘 되었건 잘 못 되었건 우리의 소중한 선택이었다

다른 결정을 했다면 더 좋았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나빴을 수도 있다

자신만이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다

남의 말에나 잣대에 휘둘려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평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젊은 시절이 그립고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시 시작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지금 모습일 것 같은 것이다

지나고 나니 잘못된 선택 같아도 그 상황에서는 그 선택밖에는 할 수 없었다

누구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여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 일뿐이다.


지난날로 돌아가 똑같은 선택을 하기보다  남은 날들에 충실하고 싶다.

수많은 선택을 하며 나만의 기준도 있게 마련이다

나답게 남은 날들을 살아내고 싶다


세간의 이목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최선이라던가, 최고라던가, 인생적이라던가 하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옳은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쁜 꽃들도 어느 것이 제일 예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같이  본 꽃이 예뻤다고 말할 수는 있다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도 소화 불량에 걸리면 미음 한 숟갈만 못할 수 있고

친구와 나누어 먹은 편의점 김밥 한 조각이 아주 맛있었을 때도 있다


집이 편하고 좋지만 호사스러운 호텔에서 보내는 하룻밤도 꽤 괜찮고

야영을 하며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리는 잠자리도 로망이다


무엇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닥터 지바고를 보며 감동한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어젯밤처럼 스케줄에 밀리기도 하도 좋은 신작 영화에 밀리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이던 그렇지 못하던 그 당시로는 내가 해야 했던 선택이다


그 순간들을 존중한다

비록 결과가 남만 못할 수는 있겠지만 내 선택이 내 것이다


"그게 바로 당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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