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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Nov 11. 2024

룸 넥스트 도어, 삶과 죽음의 경계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할 권리 


 '룸 넥스트 도어'는 말기암 환자, 마사가 스스로 안락사를 택하며  

그를 주변에서 지켜보는 친구, 잉그리드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이다 

자칫 어둡고 무거워지기 쉬운 테마를 아름답고 가볍게 그려내지만 울림은 무거웠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느라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 앞에 안락사를 인정해야 하느냐 않느냐의 문제는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다만 죽음이 삶의 마지막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지막을 자신의 의지대로 마감하고 싶은 건 인지 상정,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정신도 없이 신체도 움직이지 못하고 짐승처럼 연명하는 모습은 가장 두려운 삶의 마지막 모습이다

나는 자살이 아닌 죽음을 조금 앞당기는 안락사라면,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영화는 과거, 같은 출판사에 근무하던  마사와  잉그리드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마사는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말기암을 선고받고 투병 중이고

잉그리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 중이다

오랫동안 적조했음에도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들은 곧 옛날의 친분을 회복하고

마사와 잉그리드는 이야기는 세계관, 환경문제, 전쟁, 마사의 딸 미셀, 마사의 종군기자 생활, 그녀들의 사랑, 

마사의 연인이었다가  잉그리드의 연인이 된 환경론자 데이미언까지  종횡무진 이어진다


마사의 종군기자 생활은 그녀에게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게 했다고 본다.

전쟁의 공포와 죽음 앞에서 사랑도 사치이지만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전쟁터에서

여자 종군기자의 삶이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사에게는 종군기자 전, 아직 어린 대학시절에 낳은 딸이 있다

남자 친구가 월남전에 참가 후 피폐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자신을 회복하려 떠나며 그녀에게 남겨준 딸이다.

딸은 계속 아버지를 찾으며 그녀를 원망했고 젊다기보다 어린 그녀도 딸을 품을 수가 없었으니 

딸과 그녀는 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다.

마사가 끝까지 그녀가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숙제로 남겼던 문제이다.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자신의 안락사 계획을 말하며  협조를 요청한다.

말기암 환자로 고통스럽게 삶을 견디느니 자신의 의지로  삶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안락사를 돕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 주면 된다는 부탁이다.

잉그리드는 죽음을 각오한 마사의 평온함과는 다르게 

죽음이 두렵고, 마사의 사후에 후환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있었지만 

차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틈틈이 그녀의 안락사 계획을 말려 보기도 했으나 마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전쟁터에서 이미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깊게 뿌리 박혔을 수도 있었겠다


숲 속의 아름다운 집에서 마사의 죽음을 앞둔 그녀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사가 결심하는 그날이 끝이었다 

마사는 '자신의 방문이 닫히는 날'이라고 잉그리드에게 말해놓았다

방문이 닫힌 어느 날 잉그리드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했지만 오해였다

실수로 닫힌 문이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잉그리드도 차츰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내 그날이 오고 잉그리드는 뒤뜰 햇살 밝은 곳에서 죽은 듯이 누우 있는 마사를 발견한다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 경찰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며 잉그리드는 담담히 사후 처리를 해 나간다

마사의 딸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해 주고 딸은 마침내 어머니를 이해한다

딸은 자진해서 어머니의 숙소를 찾아오고 어머니가 누었던 침대에 누워 본다 


'눈이 내린다/네가 지쳐 누워있던 숲으로/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

눈 내리는 창을 보며 잉그리드가  시를 읊는 동안 환상인 듯 죽은 마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한강의 소설 속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교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니라 합쳐서 하나가 되는 완전체가 아닐까?

영화는 죽음이 테마지만, 바꾸어 말하면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에 두고 두 여인의 삶에 대한 회한과 회고.


'룸 넥스트'도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종군기자라는 특수성도 있고 동서양간의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개방적인 그들의 사랑이 인상적이었다 

딸에게는 상처일 수도 있겠지만 딸을 가지게 된 그녀의 태도는 용감했고 책임감도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도 진실할 수는 있다.

그녀가 종군기자를 택한 것도 남자의 상처와 일맥상통한 것은 아닐까?

떠난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순간 진실했다면  솔직하고 아름다운 것 아닐까?


그녀들의 연인 데이미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힘들지만 사랑하던 사람이 떠난 후 

그들의 삶을 서로 축복해 주는 것이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물론 이별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잘 해결된 후애야 가능한 일이긴 하겠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별의 상처가 크게 남는 구조이다.


'룸 넥스트 도어'영화는 두 번 이상 보아도 좋을 듯하다 

스피드가 빠르지도 않고 플롯이 강렬하지도 않으며 

흐르 듯 매친 곳 없이 흘러 개인에 따라서 단조롭거나 지루할 수도 있지만  여운은 강하다 

안락사, 존엄사에 대해 강한 화두를 던지며 삶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대화는 마사가 잉그리드에게 이야기한 딸에 대한 말이다.

책임지지 못한 딸이지만 딸이 그녀의 삶의 원천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종군 기자로 활약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왔지만 딸 문제만큼은 풀 수 없는 숙제였다 


마사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잉그리드에 의해 마사는 죽은 후에야 딸과의 화해를 하게 된다 

처한 위치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해석이 많을 듯은 하다

눈이 내린다/ 네가 지쳐 누워있던 숲으로/네 딸과 내 위로/산 자와 죽은 자 위로 '

잉그리드의 마지막 말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교류이다

죽음은 생각만큼 인간관계를 단절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마음속에 살아 있다면 그의 삶은 남은 사람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PS: 슬프고 아픈 주제를 아름다운 화면에 담았다

   색채의 아름다움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할 듯하다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소설 "어떻게 지내요?"가 원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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