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는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고등학교 사택에 살았다. 학교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주변은 논과 밭, 작은 동산이 있어 한적한 시골 풍경이었는데 덩그러니 학교 건물이 놓여 있었고 넓디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운동장은 끝 간 데 없이 너른 벌판이었다. 겨울 방학이 되어 운동장에 흰 눈이 쌓이면 학교 옆에 있던 우리 집은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마을에서 섬처럼 고립되는 것만 같았다. 방학을 맞아 빈 운동장에 쌓인 눈은 미동도 없이 며칠이고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달 밝은 밤에 창을 통해 보는 운동장의 흰 눈빛은 경이로웠지만, 칼로 가슴을 베이는 듯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자 두려움일 수도 있었겠다.
나는 운동장을 향한 큰 창을 열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운동장에서 연결되는 길은 구부러져 있었고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밑으로 내려가며 집에서는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다.
11월의 거리라는 사진을 기억한다. 30대 초반, 우연히 들른 사진전에서 보았던 사진 중 하나이다. 나무들은 헐벗어 나목이 되어 있었고 길에는 한두 잎 말라빠져 버려 당장 바스러질 듯한 나뭇잎이 구르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스산한 찬 바람이 불어 나오고 그 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거리의 중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도 종종 그 길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사진의 정확한 장면은 흐려졌지만 삭막하고 스산하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며 마치 내가 찬바람을 맞으며 그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삶이라는 건, 반원 무지개처럼 포물선을 그린 길이 아닌가 한다.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정점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길.
정점을 향하던 30세 언저리의 나는 늘 허전했다. 메꾸어야 할 무언가를 찾아 헤맸지만, 현실을 도외시할 수도 없었다. 무엇이 허전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실에 매달려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돌아볼 여유 없이 맹목적으로 치열했다.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고 누군가 뒤따라 오는 것만 같았다. 천성이 모질지 못하니 앞뒤 좌우 살펴볼 요량도 없이 현실에 끌려다녀야 했다. 가슴 한쪽에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현명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나름 성실한 삶이었다. 열심히 살긴 했지만 잘 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내 삶은 포물선의 정점을 지나 미끄러지듯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꽃"이라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올라가느라 잔뜩 준 힘을 빼고 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음에 불고 있던 찬바람의 정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가속도가 붙는 내리막길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탄탄대로에서 벗어나 힘들게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길 뒤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니 훗날에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처럼,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남을 수도 있다.
‘이제와서’라는 단서가 따라다니는 선택이다.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었으니 정리하고 ‘입은 닫고 눈 감고 지갑만 열고 살아야 한다’ 라는 노인 십계명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일반화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세류에 휩쓸리며 숨 가쁘게 젊은 날을 보내야 했으니, 이번에는 내 길을 내가 선택해 보고 싶다. 세간의 말들에 휩쓸리지 않겠다.
백세시대라 하니 노후의 기간이 길어졌다. 정리만 하며 보내기엔 긴 세월이다. 이제 막 시작한 글쓰기가 어려워 보이기는 한다. 친구들 말처럼 날고 기는 작가도 먹고살기 힘든 실정이다. 젊을 때는 할 수 없을 선택이다. 눈앞의 의무와 책임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은퇴 후의 장점은 의무와 책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나니 홀가분해진 편이다.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듯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나는 창을 통해 구부러진 길을 바라보던 어린아이와도 같다. 그때처럼 운동장이 막막하거나 경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길의 끝을 보고 있다. 굽어져 더이상 보이지 않던 길을 보고 있다.
백세시대라는 명제 앞에 우리가 받은 숙제일 수도 있다. 새로이 만들어야 할 길, 넓게만 보이던 운동장을 지나 구부러진 길을 숨 가쁘게 달리면서 가슴속에 부는 바람을 잠재우지 못했으니 이젠 바람 부는 대로 걸어가 보려 한다. 11월의 거리가 스산하지만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