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자기야, 우리 남편 오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자기 보면 그이도 좋아 할거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비음 섞인 살가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 언제 오는데? 어디 가셨어?” 격의 없는 그녀의 태도가 좋아 나도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 돈 벌러 갔지, 돈 많이 버느라 좀 늦나 봐,” 천진한 아이 같은 억양으로 그녀가 말했다. “네 남편 너무 오래 안 오는 거 아니니? 남자들 못 믿는다. 너, 혼자 두면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게 남자들이야,”다른 친구의 말에
”우리 남편은 눈을 맞으며 밖에서 나를 세 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어.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우리 집 문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니까, 나하고 한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는 사람이야, 조금 늦어도 꼭 올 거야“ 자신에 차서 확실하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약속을 잘 지켰다. 시간에 맞춰 약속한 장소에 5분 먼저와 기다리는 것은 물론, 부득이 늦거나 사정이 생겼을 때는 사전에 연락을 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아주 중요한 약속이 깨지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녀의 경우라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어 준다.
선천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도 있지만, 그녀가 약속을 중시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습관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들은 엄친아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성격이니 엄마의 완벽주의와 때로 부딪치기도 했다. 아들이 ’실속 없이 사람만 좋다‘는 그녀의 불평이다. 그런 아들이지만 엄마를 닮아 약속은 잘 지켰다. 주변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일이다.
그날도 아들은 약속이 있었다. 야근 후 회식으로 가벼운 술 한잔을 한 후 사업 상담차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아들은 사무실에서 떠나기 전 서류를 챙기며 선배에게 약속을 확인했다.
"선배, 지금 사무실에서 출발해요, 30분 후에는 도착할 거에요" 30분이 지나도 아들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선배는 '이럴 리가 없는데 ·· 길이 막히나보다, 주차가 힘든가 보다’ 온갖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미리 연락이 없었으니 오는 중이라 생각했다. 30분이 지난 후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 10분 후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든 선배는 부랴부랴 아들의 사무실을 찾았고 사무실에 쓰러진 채인 아들을 발견했다. 급하게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갔고 뇌졸중이 진단되었다.
아들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신혼이었다. 의식 불명인 채로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울부짖는 며느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원망스러웠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힘으로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귀하게 키운 아들이다.
남 못지않게 건장한 체구였고 작은 병치레도 해본 적이 없는 건강한 몸이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기가 막혔지만, 그녀는 정신 차려야 했다. 아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며느리를 사돈댁에 맡기고 그녀는 아들 옆에서 24시간 간호를 맡았다,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 아픈 일이었다. 30대의 건강한 아들이 하루아침에 수족을 쓸 수 없었고 말도 잘하지 못했다.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갔다. 눈을 맞추고 말을 시작하고 힘들게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성과 현대 의학의 힘도 있지만 골든 타임 내에 병원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소 아들이 약속을 지키는 습관이 없었다면 선배는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은 사무실에서 쓰러진 채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며느리와 자신은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을 것이며 다음 날 출근 시간이 되어서야 아들은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다,
30대 젊고 건강한 아들이 뇌졸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인정받던 아들의 성실한 습관이 뇌졸중이라는 피하고 싶은 현실에서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들을 발견한 선배가 생명의 은인이지만 선배에게 신뢰를 심어준 것은 아들의 약속을 잘 지키는 습관이다.
어느새 40대가 훌쩍 넘어 50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인데 그녀는 아직도 그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들을 잃을뻔한 참담한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가장 중요한 약속을 깰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 없었다. 응석을 받아주던 연애 시절에 생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미안할수록 어깃장을 놓았다, 매사에 어긋나는 그녀를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살뜰히 보살피던 남편이었다. 대들보처럼 튼튼하던 남편이 병을 얻은 때가 아들이 쓰러지던 나이쯤이었다. 극심한 고통을 참으면서 끝까지 남겨질 가족을 걱정하던 사람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잘 보살피겠다는 약속만큼은 잘 지키겠다고 몇 번이고 남편과 약속 했다. 그동안 수없이 남편을 괴롭힌 일이 마음 아팠다. 남편이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 약속 못 지킨 거 지금부터라도 잘 지킬게요, 우리 아이들 책임지고 정성껏 보살필게요, 약속해요, 대신 언제든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면 곁에 있어야 해요“ 그녀의 말을 남편은 끝까지 다 듣지 못했으나 그녀에게는 남편과의 마지막 굳은 약속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언제든 그녀가 원할 때 남편이 옆에 있겠다는 남편과의 약속을 믿고 있다.
나도 처음엔 그녀의 남편이 궁금했다. 자상한 그녀의 남편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막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도 얼마간은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기다림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남편의 부재를 알고 있다는 걸 아는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이 그거 하지 말래“ 짐짓 ”하늘나라에서? 여기까지 들리니?“ “아니 약속했잖아, 내 마음속에 살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지만 내 곁에 있어.” “나쁜 사람이야, 널 놓아주어야지 붙들고 있으면 되니? 너도 행복해져야지”“아무리 눈 씻고 봐도 우리 남편만 한 사람이 없더라, 날 위해서 밖에서 밤새워 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약속을 안 지킬 수가 없어, 평생 나만 바라보고 살다가 간 사람인데 마지막 약속만큼은 지켜주고 싶어”하고 있다.
70대에 이런 열렬한 사부곡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조금 낯 간지럽지만 지키고 있는 약속만큼은 부럽다. 아들의 생명을 구한 것도 아들이 약속을 잘 지키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생 아빠와 한 약속을 지키는 엄마를 바라보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마음속이 아닌 가상세계에서 그녀는 남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문명의 발전 속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일 것도 같다.
우리는 그녀 안에 그녀의 남편이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다.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서 아름다운 그녀가 가상세계에서라도 남편을 만날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명의 발전 속도를 믿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