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은 무능과 통한다고 한다.
모든 걸 잘한다는 건 하나를 특출 나게 잘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딱 부러지게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니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좋아하는게 많아 하나를 골라내는 선택 장애가 있을 뿐이다.
단순히 노래뿐만은 아니다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때그때 다르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푸른색의 심연에 빠져드는 듯하다
세상에 가장 예쁜 색은 하늘색이어야 한다
잠깐 시선을 내리면 울긋불긋 고운 단풍들을 본다,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다
어떤 단풍이 제일 예쁘냐고 묻지 마라
노랑 은행잎은 은행잎대로 붉은 단풍은 붉은 대로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나하나 제일 예쁘다
한들한들 코스모스와 성숙한 여인의 자태 같은 국화 중 어떤 게 더 예쁘냐고 물어서도 안된다
코스모스를 볼 때는 코스모스가 가장 예쁘지만
국화를 보고 있노라면 매혹적인 그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11월의 장미도 고혹적인 자태를 잊지 않는다
그러니 수많은 노래 중 인생 명곡 하나만을 고를 수는 없다
클래식을 듣고 있노라면 클래식의 우아한 선율에 녹아들고
심금을 울리는 유행가를 들으면 그게 다 사연 같다.
흥겨운 민요에 스며있는 삶의 애환은 또 어떤가?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명이건만 애틋한 슬픔이 묻어난다
어떤 노래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꼭 대답해야 한다면 "그때그때 달라요" 할 수 있겠다
지난 9월 한강 뚝섬 공원에서 있었던 드론 쇼의 웅장한 배경음악은 그대로 신의 한 수였다
첨단과학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불빛 쇼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드론 쇼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곡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었다
요즘에 입에 달고 다니는 친숙한 가요
'위스키 언더 락'이 그 순간만큼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https://youtu.be/NRhYAttexQ0? si=iHclWMiYU3 t-45FW
가요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니다.
'위스키 언더 락'은 한동안 유행의 물살을 타다가 지금은 한소끔 소원해진 노래이다
유행할 당시에는 듣지 못하다가 뒤늦게 흥얼거리고 있다
지금 이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이기도 하고
가사에서 느껴지는 동병상련의 기운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지금의 내 모습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하고 큰소리치다가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네"
하며 현실을 본다
유행가 가사는 내 이야기 맞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찌 내 얘기만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에일리처럼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큰 소리도 쳐 보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하며 김국환과 함께 삶의 허무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그때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된다
지난 시월에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잊혀진 계절'을
번갈아 흥얼거리곤 했다
지금은 입 속으로 위스키 언더락을 흥얼거리며
최애 노래를 꼽을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노래가 많으니
무능이 아니라 만능이라고 우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