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걷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문학 탐방 코스에 포함된 이외수 문학관에 가고 싶지 않았다.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던 그의 기이한 행보와 파격적인 언행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 ‘나와는 맞지 않는 작가’라고 단정하며 그의 글을 깊이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화천 여행은 그런 나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문학관 앞에 서는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두꺼운 선입견 속에 갇혀 있었는지,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단지 나와 조금 다를 뿐이었다.
나와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외면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호기심의 시작이며, 세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산 깊은 곳,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따라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자리. 그곳에 ‘감성마을 이외수 문학관’이 있었다. 작가가 직접 ‘자연이 주인인 마을, 감성이 살아나는 마을’이라 이름 붙였다는 그곳은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했다.
문학관의 외형부터 남달랐다. 2012년 8월에 문을 연 이곳은 국내 최초의 생존 작가 문학관으로, 건축가 조병수 박사가 소설 《벽오금학도》에서 영감을 받아 ‘학이 승천하는 형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하늘이 그대로 천장이 되는 중정(中庭)과, 돌이 시처럼 서 있는 시석림(詩石林)은 자연과 문학이 하나 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엔 솔직히 이 공간이 불편했다. 생존 작가를 위한 문학관이라니, 마치 스스로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듯한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졌다.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전시실을 따라 걸으며 그 생각은 점점 부끄러워졌다. 그의 삶과 작품은 단순히 ‘기이한 작가’로 치부할 수 없었다.
1972년 등단 이후 춘천 산골에서 ‘얼음밥’을 먹어가며 고행하듯 집필을 이어간 작가의 궤적, 그리고 《꿈꾸는 식물》, 《칼》 등의 작품에서 드러난 독창적 상상력과 날 선 현실 인식은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문학을 사랑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문학관 곳곳에는 글을 넘어선 예술혼이 배어 있었다. 화가를 꿈꾸던 젊은 시절의 그림들, 직접 디자인한 ‘이외수 목저체(木箸體)’ 캘리그래피, 그리고 벽면에 적힌 좌우명,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그 모든 것이 글쓰기를 생의 중심에 두었던 작가의 치열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입견으로 무장한 내게 그의 파격은 돌출적 행동이 아니라, 감성을 회복시키려는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의 비루함을 벗어나 이상향으로 향하는 모습은, 물질만능의 시대를 향한 저항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위로였다.
한때 ‘트통령’이라 불리며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던 모습 또한 세상과 벽을 허물고 다가가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문학관을 돌아보며, 나는 비로소 작가 이외수를 온전히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작가의 본모습이 아니라, 언론과 소문이 만들어낸 그림자였음을 깨달았다.
이번 문학 탐방은 한 사람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일을 넘어,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 같은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입견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그가 걸었던 길 위를 겸허히 걸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 그의 글을 다시 펼칠 용기가 생긴다.
그의 말처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
그 길 위에서 내 편협했던 시선이 조금은 더 넓어졌기를,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