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로 피어난다

by 우선열

'글 잘 쓰는 아이'는 내 별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이 붙여준 그 이름은 내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나는 우쭐했고 내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열 살 남짓이었다. 세상은 동화 같았고 나는 그 속의 주인공인 공주였다.

당시에 나는 '공주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끝나는 동화에 사춘기가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에 겉으로 보는 나는 평온했다. 공주를 내려놓고 평민이 되어야 했지만 주어진 환경에 잘 순응하는 듯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적응은 어려웠나 보다. 내 자긍심의 원천이었던 글쓰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남보다 잘 쓸 수 없다면 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주 잘 쓴 글을 떡하니 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월은 내 마음속에 글 잘 쓰는 아이를 남겨 놓고 속절없이 흘렀다. 이따금 글을 써보고 싶었으나 잘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아니었다. 나는 글 잘 쓰는 아이여야만 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때 멋지게 실력을 보여주자' 그럴듯한 변명도 만들었다. 또 한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해야 할 일에서 놓여났다. 은퇴였다.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그래서 이제 와서 글을 쓰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 글을 쓰고 싶다는 내 말에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 뒤에 숨을 수 있었다. 못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이라 위안했다. 쓰기만 하면 잘 쓸 수 있는 소녀가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었다.

그날은 새벽에 잠이 깨었다.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지는 법이다. 약간 쌀쌀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던 어머니가 생각나 정성껏 끓인 차 한 잔을 놓고 앉았다. 어느새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써 놓은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 잘 쓰는 아이의 글이 아니었다. '이제 글쓰기는 내려놓아야겠다' 생각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존재를 거부당한 듯했다. 그제야 60년 세월이 보였다. 60년을 건너뛸 수는 없는 법이다. 열 살 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글쓰기 초보자가 되기로 했다. 비로소 '글 잘 쓰는 아이'의 짐을 내려놓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동화 속 공주가 아니다. 온실 속의 화초도 벗어났다. 들판에서 열심히 자라야 하는 야생화이다. 때로는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지나가는 누군가의 눈에 띌 수 있다면 특별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동화 속 공주처럼 화려한 온실 속의 꽃이 아니어도 좋다. 수다히 꽃을 피우며 존재를 알리는 보잘것없는 야생화로도 충분하다. 못난이 야생화를 곱게 봐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