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밝은 창가에 큰 책상 하나

by 우선열

'햇살 밝은 창가에 큰 책상 하나 마련하는 것', 오랫동안 간직해 온 내 로망이었다. 이 소망을 길게 끌어 온것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때'라는 단서를 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언젠가는' 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 하나를 간직했다. '글 잘 쓰는 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쓰기만 하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그 글 잘 쓰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럴듯한 변명에 숨어 한 줄 글도 쓰지 않았다. 세상을 감동시킬 좋은 글이 아니면 쓰고 싶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세월이 흘러 은퇴를 맞았다. 해야 할 일에서 놓여났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부진 마음을 먹었건만 한 줄 글도 쓸 수 없었다 .' 이제 와서 글을 쓰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친구들의 말이 좋은 핑계가 되었다. 전철 공짜표를 타고 서울 근교 풍광 좋은 곳을 희희낙락 찾아다니기도 하고 복지관에서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했지만 성이 차지 않았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듯했다.

조금 추운 날이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새벽에 잠이 깨었다. 방안 공기가 조금 찼으나 청량한 기운이었다. 따스한 차를 마주하고 앉으니 마치 그 옛날 어머님의 정화수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경건해졌다.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살아 났다.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막상 써놓은 글은 형편없었다. 글 잘 쓰는 아이의 글이 아니었다. '이젠 글을 쓸 수 없나 보다' 생각한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그 눈물 속에 60년의 세월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글 잘 쓰는 아이가 아니었다. 60년의 세월을 받아들였다.

창가의 큰 책상은 여전히 내 로망이다.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나는 글쓰기 연습생이 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척척 써 내려갈 수 있을 때가 되면 큰 책상을 마련하리라. 컴퓨터 두 대가 들어가야 하고 읽을 책들을 쌓아 놓을 수 있어야 하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제법 그럴듯한 청사진도 마련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햇살 아래 큰 책상에서 글을 쓰는 일은 내 로망이다. 마음에 드는 그런 책상을 마련하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그건 글 잘 쓰는 아이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좋은 글'을 내려놓으며 가능해졌다. 나는 나 다운 글을 쓸 수 있을 뿐이다.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글을 쓰는 시간이 좋아졌다.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책상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노트북 하나 겨우 들어가던 작은 책상이 지금은 컴퓨터와 노트북을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책상이 되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뿐이라 한다. 나는 지금 그 로망을 향하여 느리지만 천천히 쉬지 않고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