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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Aug 12. 2024

다시 해보는 거야, 다시 다시

인생 첫 경찰서 방문, 평생 잊지 못할 장면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어젯밤, 남편의 투자 사기 고백의 여파로 잠을 잔 게 맞긴 한지, 눈을 뜨긴 했지만 여전히 꿈 속인 듯 몽롱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야 했다. 우리에겐 할 일이 있었다. 첫째가 감기약 항생제가 맞지 않아 설사를 한다. 토요일, 역시나 소아과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다. 일찍 움직이지 않으면 반나절은 그냥 간다. 우리는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진료를 봤고,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로 가는 길. 그 길은 유난히 멀고 무겁게 느껴졌다. 장마라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비가 쏟아졌다. '하필 날도 이리 구질구질하다니. 내 인생 망했다고 대신 울어주기라도 하는 건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둘째는 아기띠, 첫째는 남편 손을 잡고 민원실로 향했다. 문이 닫혀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에게 물으니 평일만 운영한단다. "나쁜 포털사이트 같으니라고!"(순화했다...) 내가 검색한 경찰서 운영시간은 "매일 09:00-18:00"로 되어 있었다. 별 소득 없이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발을 재촉하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곰인형을 품에 안고 아빠를 따라 아장아장 걷는 내 첫째 딸의 모습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 뻔했다.

애착 곰인형 안고 등원 중인 첫째

'슬픔을 감출 길이 없다. 이 참담함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게 뭐란 말인가. 이게 무슨 일이지? 이건 다 꿈일 거야. 누가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는 거 아냐?' '남편이 끔찍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게 분명해...'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 되뇌었다. '이건 기회다. 줄곧 돈 벌어야 한다. 돈 아껴 써야 한다 생각만 했지 실행을 못했는데, 정말 돈 벌고, 돈 아껴 써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진 게 아닌가. 더 크게 돈 벌 거야. 만회할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입맛도 없어졌으니, 다이어트도 해야 한다고만 했는데...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이게 사기인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기 거래소를 알려주고, 큰돈을 투자하게끔 유인했던 그 사람을 친구라 일컬었고, 그 친구가 자기의 답을 기다릴 테니 얼른 연락을 해줘야 한다고... 남편이 보증금(투자 원금 및 수익금을 출금하기 위해 내라고 한 돈) 낼 돈이 부족하다고 하니 일부 빌려주겠다고 한 것에 대한 답을 해줘야 한단다... 내가 판단하기엔 그자가 거래소 사기의 유인책이자 남편의 돈을 먹은 사기꾼인데 말이다.


절망스러웠다.


아이 둘 양육하며 1년에 얼마를 모아, 얼마의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대출받아 생긴 빚뿐인가? 날린 우리 돈은? 그 돈을 다시 모으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우리 수입이면 1년에 얼마씩, 총 몇 년에 걸쳐 빚을 갚을 수 있고... 이런 수치로만 따져보니 산후우울증 겪었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불안하고 무기력해지고...


집은커녕... 빚만 갚다가 퇴직하겠는데? 아이들을 잘 키울 수나 있을까? 빚을 갚고 다시 돈을 모아가면서 나는 몇 번이나 무너지고 또 무너질까? 이런 생각들 끝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선에서, 최소한의 행복은 지키면서' 그렇게 이 시기를 보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딸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현명하게 행동하자.  


과일 모형에 난 구멍에 코바늘을 끼우는 장난감이 있다. 코바늘이 구멍에 잘 안 들어가는지 첫째가 짜증을 냈다.  나는 '다시 하면 돼,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다시 다시' 하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래 다시 해보자.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다시 서자. 아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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