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
우리는 왜 같이 살아야 하나?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23개월인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9개월인 둘째는 가정보육 중이다.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기 위해 티비는 켜지 않고, 항상 배경음처럼 라디오를 켜놓는다. 때마침 라디오에서는 '배우자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왜 이 사람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얄궂다. 남편에 대한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내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하다. 나는 남편이 몰래 대출을 받아 투자를 했다는 사실에 큰 배신감을 느꼈고, 신뢰가 깨졌다. '내가 왜 이 사람과 살아야 하지? 우리는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종일 들었다.
'왜 이 사람이어야 하나?'
그냥 흘려듣던 라디오 사연에 숙제라도 받은 듯 답을 찾으려 했다.
내가 왜 이 남자를 선택했을까. 이 남자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왔다. 부모님 댁을 나설 때면 엄마, 아빠를 꼬옥 껴안고, 뽀뽀하는 게 자연스러운 남자였다. 남편이 부모님을 대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결혼하고 꾸릴 우리집 모습이 이랬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다. 또한 결혼 전 몇 번 뵙지는 못했지만, 시부모님의 인품이 훌륭하셨고, 특히 부부지간, 자식과의 관계에서 어머님의 지혜로움과 현명함을 느꼈다. 이런 부모 밑에서 큰 자식이라면 틀림없다 싶었다.
문득문득 나오는 아기(아이) 이야기에 아기를 좋아함이 느껴졌다. 시어머니께서 젊으실 때 아기 돌보는 일을 하셨다는데 '지금은 00이(돌봐주던 아기)가 몇 살쯤 됐겠다', '00이도 이렇게 잘 먹었었는데' 하며 종종 얘기하곤 했다.
엄마인 나보다 아이가 필요한 것에 더 세심할 때가 많고, 놀아줄 때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너무 행복하게 들린다. 지인, 친구들의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데 그래서인지 내 친구들이 우리 만날 때 내 남편을 꼭 데려오라고 한다.
돈을 끔찍이도 생각했다. 허투루 돈을 쓰는 법이 없었고, 돈을 모아야 한다(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했다. 계산이 빨랐고, 재테크 공부를 '꾸준히' 했고... 정말 돈에 진심인 남자였다. 추석에 보름달 보고 소원을 빌라고 하면, 생일 때 촛불 끄며 소원을 빌라고 하면 꼭 '로또 1등 되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런 남자가 지금껏 자기가 모은 돈을 다 줄 수 있을 만큼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 말에 진심을 느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더 이상 '날 왜 좋아해? 얼마큼 좋아해?' 하고 물을 이유가 없었다. 이 남자랑 살면 부자는 못되더라도 돈에 허덕이며 가난하게 살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결혼 4년 차, 만 3년밖에 안된 내 결혼 생활이... 이 사람이다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와장창 박살 났다. 돈에 허덕이게 되었다. 긴 터널에 들어섰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임승차인데, 돈과 관련해서는, 돈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묻어가고 싶었나 보다. 부부가 됐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하는 것인데, 나는 좋은 일만 함께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내 삶에는 어떤 큰 어려움이 없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있던 것 같다. 참 순진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겪어온 남편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부정해야 하는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며 살 수 있을까? 아니다. 나의 선택(배우자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남편 역시 변한 것도 속인 것도 없다. 이번 일은 그저 실수다. 물론 아직도 '전적으로 니 탓, 나는 너무 억울해'하는 마음이 울컥 들 때도 있지만, 이래서는 결코 함께 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긴 터널.
넷이서 손을 꼭 잡으면 그 어둠 속에서도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터널 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보자. 살아서 보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