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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Sep 01. 2024

작은 아빠가 돈을 보내줬다

사기 고백, 가족들의 반응 1


7월의 어느 날 아침


둘째는 항생제 때문인지 일어나자마자 설사를 했다. 엉덩이를 닦아주는 사이 첫째가 잠에서 깼다. 정신없이 첫째에게 오트밀 죽을 만들어 주고, 머리를 묶이고, 기어 다니는 둘째의 찡얼거림을 노동요 삼아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때 작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작은 아빠. 

내가 남편의 투자 사기를 처음 인지했을 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연락한 가족. 작은 아빠는 극 T다. 현실주의자이며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황이어서, 작은 아빠의 따가운 말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믿을 사람은 작은 아빠뿐이었다.  


욕을 했다. 나 대신 왕창 욕을 해줬다. 어떻게 그러냐고, '관사에 사니까 그 돈이 여유자금 같지? 애 둘 낳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투자를 대출을 받아서 해! 그것도 너한테 한마디 상의도 안 하고!' 딱 내 속마음이었다. 남편에게는 차마 하지 못한 말. 말과 말 사이에는 한숨이 가득했다. 


작은 아빠는 시댁에도, 친정에도 모두 알리라고 했다. '너네들이 따로 부모님들께 해드리는 게 없다고 하더라도 명절이며 생신에... 기대치라는 게 있지 않냐'고, '너네 사정을 모르면 가족 간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라고. 남편은 주저했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장 8월에는 부모님 결혼기념일, 9월에는 추석, 아빠 생신, 시어머니 생신, 10월에는 둘째 돌...


그리고 '돈 관리를 따로 하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말했다. 우린 결혼 전 번 돈(재산)에 대한 공유를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굳이 남편의 결혼 전 번돈까지 터치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허튼 돈을 안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물론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돈 관리면에서 잘못되었음을 인정한다. 


작은 아빠에게 연락한 뒤로도 몇 번의 통화를 더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계좌를 말하란다. 이러려고 전화한 건 아녔다. 추호도, 정말 1도 그런 마음은 없었다. 작은 아빠도 가정이 있는데, 자식이 둘인데... 오백만 원을 보내줬다. 무려 내 2.5달치 월급이다. 눈물이 났다. 마음이 또 무너져 내렸다. 


'너네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출 갚는데 올인하고, 이것도 못하면 너네는 자식들에게 원망받는 부모가 된다. 사람구실 하는 건 내가 사람답게 살 때 하는 거야. 돈 십만 원이라도 절대 쉽게 생각하지 말어. 정신 바짝 차리면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독해져야지 독하게 마음먹어야지. 다시는 이런 일로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말아야지. 



웃는다.

엄마, 엄마, 엄마 하며 말을 시작한 둘째가 나를 보며 웃는다.

슬프다. 그 웃음에 내 마음은 슬프다.

그래 웃자. 이 아이를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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