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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Jan 03. 2024

쉬어 보니 좋다.

요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회사 관두고 쉬니 어떠냐는 말이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겠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 대답이 바뀌었다. 쉬니 좋다고.


  쉬어 보니 좋다. 실감이 난다. 퇴사하자마자 코로나로 몸 아프고, 차 박살 나서 머리 아프고 하다 보니 영 체감하지 못했다. 후유증이 약간 남았지만 잘 회복했고 자동차도 뒤처리가 거의 다 끝나 이제야 한숨 돌리는 중이다.  


  회사를 관두고 나면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퇴사원의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하고,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고, 오후 늦게까지 카페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삶. 역시나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고작 하루 서너 가지뿐인 계획이라 실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나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실천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임을. 


  출근에서 해방된 나는 새벽이 되어야나 잠이 온다. 늦게 잠드니 점심때 즈음에야 겨우 일어나 밥을 먹는다. 오후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고 집안일 한두 개 깨작하다 보면 금방 해가 떨어져 저녁이다.


  그리고 다시 새벽. 그렇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이다. 낮과 밤이 뒤바뀐 올빼미의 삶. 전형적인 백수의 테크트리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 지금의 나를 보고 있노라면 10년 가까이 어떻게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을 했나 싶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다. 요즘 사람들이 내게 묻는 질문에 답한 대로 쉬니까 참 좋다. 정확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틀에서 한참 벗어나 살고 있는 하루하루에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뭔가 규정된 삶으로부터의 일탈 같다고나 할까?


  질문한 사람들은 내 대답을 듣고 나면 하나같이 부러움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당분간은 그 시선들을 충분히 즐길 생각이다. 바야흐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아주 긴긴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신 아침도 없는 삶이긴 하지만.





*사진출처: Photo by Olena Bohovy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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