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지만 당당한 이유
백수답게 살려고 애쓰는 중이다. 백수면 그냥 백수지 백수답게 사는 건 또 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세상천지 백수는 많아도 마음 편히 사는 백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몸만 편하지 마음은 불안함 가운데 살고 있을 것이다.
회사를 관둔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일할 때는 죽어라 안 가던 시간. 퇴사하고 나니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흘렀다. 회사 다니던 게 엊그제 같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체감상 반년 정도 된 것 같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꽤 오래 망설였다. 솔직히 말해 꼬박 2년 정도는 매일 밤 고민했다. 관둘까 하다가도 이런저런 현실의 이유를 들어 다시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어떻게든 내가 더 일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굳이 생각을 짜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도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수십 가지는 족히 되었으니까. 물론 그중 첫 번째 이유는 늘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닌데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을까? 고스란히 아내에게 부담을 지우게 될 것 같아 미안했다. 밤마다 나는, 나를 재우며 내일도 출근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그렇게 설득해 냈다.
그랬던 내가 마음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해 내 안에 있는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울한 나 때문이다. 옛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데 어느 날 문득 늘 있던 수많은 자아들은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나만 홀로 남아 있었다.
우울한 나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행복하냐고.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나를 일으켜줄 마음의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나는 회사를 관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관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기 때문에 용기라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회사를 관둔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더 관두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기 위해 극단적인 전제를 내세웠다. 이를테면 이런 상상을 매일 했다.
만일 내가 내일 죽게 된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하루라면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지하게 이 질문 앞에 나를 세우고 나니 생각은 단순 명료해졌다. 버릴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을 걷어낼 수 있었다.
나의 마지막 남은 행복한 하루를 사는 데 있어 직장은 필수요소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그랬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일을 통해 행복을 얻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다만 내가 일했던 곳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곳은 아님이 분명했다. 이 사실이 선명해지니 비로소 내려놓을 용기가 생길 수 있었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이라니 좀 섬뜩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 결심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직장과 헤어질 할 결심을 하고 난 뒤, 조금씩 행복해졌다. 누군가는 대책 없이 사는 백수 한량이라 욕할지 모르지만, 당신이나 나나 결국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요즘 나는 진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쉬고 즐기며 놀고 있다. 감히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런 백수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마치 백수계에 큰 획이라도 긋고야 말겠다는 듯이.
이런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분명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그때도 신중하게 질문할 것 같기는 하다. 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하루에 그 일이 속해 있는지 말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무엇이 나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해 주는지를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오직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우리는 모두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올 때나 순서가 있지 갈 때는 순서가 없는 법. 인간은 모두 시한부 인생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