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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20. 2024

태수는 왜 하빈에게 시계를 선물했을까?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마지막 회 리뷰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이친자’는 태수(한석규 님)와 하빈이(채원빈 님) 함께 하는 식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식탁 위에는 하빈이의 생일상이 차려졌다. 예쁜 생일 케이크도 함께 준비되어 있다. 태수는 딸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선물을 건넨다.


  하빈이가 받은 선물은 손목시계였다. 스마트 워치나 전자시계가 아닌 클래식한 아날로그 바늘 시계. 선물을 받은 하빈은 아빠에게 묻는다.



  “근데 왜 시계야?”



  물어보는 딸의 말에 태수는 살짝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잠깐의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그냥…”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가로로 긴 식탁. 드라마 초반 부분 둘의 식사장면에서는 서로 끝과 끝에 앉아있었다. 마치 경찰과 용의자의 관계처럼 멀고 오해와 의심이 가득해 차갑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부녀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때와 다르게 태수는 하빈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는 둘 사이에 있던 아니 태수가 딸을 향해 굳게 가지고 있던 모든 의심들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옆에 가까이 앉아 식사하는 평범한 부녀의 모습이다.


  식사를 시작하자 카메라는 하빈이가 받은 선물인 손목시계를 비춰준다. 카메라 앵글이 천천히 줌 아웃하면서 인물에게서 멀어지고 집 밖으로 까지 나온다. 집 앞에 심긴 나무에서 벚꽃 잎이 흩날린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고 태수와 하빈 부녀의 관계에도 이제 따뜻한 봄이 왔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수는 어떤 의미에서 시계를 선물로 준비했을까. 그냥이라고 대답했지만 이유가 있어 보였다.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극 중 하빈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함께 시계의 의미를 각자의 시각으로 해석해 내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마치 열린 결말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시청자를 향해 던지는 마지막 질문 같기도 해서 곱씹어 보게 된다. 애청자였기에 왜 하필 시계를 준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엄마와 동생을 잃고, 그 모든 의심과 오해를 홀로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온 하빈이었다. 이제 과거의 트라우마 가득한 시간에서 벗어나 현재를 함께 살아가자는 아빠 태수의 마음일 것이다. 더불어 딸의 상처가 깊음을 알기에 회복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각오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선물 상자를 열었을 때 시계는 열두 시에 맞춰진 채로 분명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부녀가 함께 식사를 시작하자 멈춰 있던 시곗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여기서 하나의 의미를 더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은 모두 시간에 종속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것.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지만 어떤 이는 멈춰진 시간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 드라마 속 하빈이 처럼 큰 사건과 사고를 겪어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지옥과도 같은 당시의 기억과 시간들 속에 갇혀 살아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하빈이의 시간도 이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오랫동안 과거에 갇혀 있었던 그녀는 이제 해방되어 현재로 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처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걸어갈 것이다. 태수에게 있어 시침의 의미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들을 반드시 딸 수빈과 함께 보내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결코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시간이 멈추는 일도 없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고통의 시간 속에서 구출해 줄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며 다가올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작은 손목시계에 담긴 의미는 한 마디로 관계의 회복이라 말할 수 있다.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태수와 하빈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시간이다. 두 사람에게 시간은 약이 되고 현재를 살게 하는 힘과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시계. 앞으로의 시간은 경찰과 용의자와 같은 친밀한 배신자가 아니라 보통의 아버지와 딸의 모습으로 살게 되리라 믿는다. 


  탄탄한 긴장감 속에서 연쇄 살인을 다루는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 준 드라마 ‘이친자’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시청자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상처와 고통,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제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시간이 왔다. 관계가 회복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따스해지길. 친밀한 배신자에서 친밀한 치유자로 함께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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