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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 Apr 21. 2024

남편은 아들처럼, 아들은 남편처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사진 1] 유튜버 '쑤 Soo' 메인 화면 이미지, [사진 2] 인스타그램 검색결과 '꼬마남친'


  “예랑이~ 점심!”

27만 유튜버 ‘쑤’는 ‘예랑이(예비 신랑)’을 위해 매일 새벽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싸주는 것으로 화제를 몰고 있다. 쑤는 현재 한국에서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 후 ‘큰 애기’로 이름을 바꾼 남편을 따라 해외로 넘어가 도시락 싸기에 매진하고 있다. 자기 식사를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인 남성을 ‘큰 애기’라고 칭하며 남편을 아들처럼 보살피는 모습은 인스타그램에서 ‘#꼬마남친’ 해시태그와 함께 그 관계가 역전되어 나타나고 있다.

  ‘꼬마남친’은 최근 젊은 기혼 여성들 사이에서 아들을 호명하는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꼬마남친’ 태그와 함께 업로드된 인스타그램 누적 게시물 수만 2.2만 개에 달한다(2023.11.8.). 해당 해시태그를 클릭해보면 어머니가 아들을 예쁘게 차려 입히고 같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등의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 밑에 남겨진 텍스트에선 마냥 웃어넘기기엔 어려운 내용들이 눈에 띈다. “엄마 셀카 찍을 시간 줘서 고마워”. “엄마도 자연스레 늙어가겠지만 …… 데이트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어줘야 해” 등 남편과 달리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군말 없이 따라주는 아들에게 고마워하고, 일찍이 아들과 함께하는 노후를 예견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큰 애기’인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는 ‘예랑이 점심’ 유투브, 아들을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남편으로 느끼는 ‘꼬마남친’ 해시태그. 정반대의 서사를 가진 것만 같은 이 두 콘텐츠는 놀랍게도 같은 원인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현상들이다. 바로 가정 내 여성의 지위를 제한하는 ‘가부장제’가 그 원인이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구조적 생존

  한국 사회가 가진 남성 우월적인 가족 제도는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술 논문 「이탈리아 가정과 한국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중심 역할」에 따르면 천주교 기반의 국가들과 달리 유교 사상에 근거한 한국의 가족 제도는 혈통 보존에 특히 집중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주된 역할은 ‘아들 출산 및 양육’에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아들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적절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받을 수 있는 대상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 정서적 생존

한편 남편은 ‘바깥사람’이라는 명목으로 가정에 소홀하고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무관심한 경우가 보편적이었다. 이병준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들이 여성의 소외감과 떨어진 권위를 회복시켜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아들이 남편을 대신해 ‘정서적 배우자’의 역할을 하게 되고, 이런 맥락 아래에 어머니는 차후 아들의 결혼생활에도 관여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고부갈등 상황에서 남편이 맹목적으로 어머니의 편을 드는 것 또한 같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들 같은 남편과 남편 같은 아들그러면 딸은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는 큰아들” 등의 제목으로 결혼 생활을 한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큰아들’은 성인으로서의 몫을 수행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남편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곤 한다. 이처럼 기혼 여성들은 배우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이를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전도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딸에게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강요시키는 경우가 많다.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 수록된 최은영의 단편 「당신의 평화」에서도, 정순은 시집살이를 하며 겪은 괴로움을 딸인 유진에게만 토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이 기혼 여성이 자기 딸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딸을 자신의 연장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살면서 겪어온 괴로움을 딸에게 투영시키고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정신분석 상담전문가 박우란은 어머니가 일찍이 동성인 딸에게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키고, 그에 따라 어머니와 동일시된 대상으로 자라온 딸이 일상적으로 어머니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딸은 어머니가 겪는 고통에 더욱 공감하게 되고 ‘효녀’가 되기 위해 자연스레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 또한 가부장제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볼 수 있다.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로부터 소외된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피고, 원가족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욕구가 딸에 대한 높은 선호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예랑이 점심과 ‘#꼬마남친이 불편한 이유


  ‘예랑이 점심’과 ‘#꼬마남친’은 다음 세대 여성들의 삶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다. 실제로 ‘예랑이 점심’을 필두로 ‘새벽6시 도시락싸는 주부’ 등 ‘남편 도시락 싸주기 콘텐츠’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쑤’는 숏츠(2023.08.03.)에서 “먼저 출국하는 남편이 외벌이하는 것이 미안하고, 자신이 사회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될까 봐 걱정”했다며, “남편을 따라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던 중 ‘예랑이 점심’ 유투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불과 1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영상 속에서, ‘쑤’가 가부장제 사회가 우상시하는 여성의 모습을 거의 완벽히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남편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밥상 차리기에 매진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자신이 행하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쑤’가 이러한 본인의 일상을 콘텐츠화하고, 이러한 콘텐츠가 유통되면서 젊은 여성들이 왜곡된 성역할을 내면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고, 귀여운 아들과 함께 단란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도시락을 싸고, 아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은 여성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이러한 여성 주체의 콘텐츠를 본 남성들은 ‘내조할 줄 아는 조신한 아내’를 기대할 것이고, 여성들은 이를 내면화하거나, 혹은 이러한 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을 것이다. 이제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차원의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참고자료 및 이미지 출처     

고은, 「‘남편 점심 만들기’ 유튜브, 뭐가 문제냐면요」, 『오마이뉴스』, 2023,8.9.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5005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이남옥,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라이프앤페이지, 2020, pp.68-69.     

이병준, 『남편사용설명서』, 영진닷컴, 2008, p. 39.     

최은영, 「당신의 평화」, 『현남 오빠에게: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p.50.     

쑤 Soo, 새색시 점심♡ |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의 영상버전이 될까봐 걱정이여요..ㅎㅎ♡ | 소갈비찜, 2023.8.23.

https://www.youtube.com/shorts/Y-v_LeiB5rU     

하우투 : 하루를 우리에게 투자한다면, 사랑은 아들에게, 요구는 딸에게? 엄마가 딸들에게 하소연하는 이유 | 정신 분석 상담 전문가 박우란 | 모녀 관계 엄마 심리, 2022.3.25.

https://www.youtube.com/watch?v=fbtMqVpJDO8     

Giuseppina De Nicola, 「이탈리아 가정과 한국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중심 역할」,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11권, 2002, pp. 23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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