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봐야 할 나라 들 중 그랜드캐년, 지구 태초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린란드와 신비로운 오로라의 나라 아이슬란드 등 세계 가보고 싶은 나라들은 너무 많았다. 특히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크나톤의 매력적인 흉상과 화려한 색채의 투탕카멘 벽화 등은 미술을 전공한 내게 죽기 전 가볼 첫 번째 나라였다. 이집트부터 터키를 거쳐 그리스까지 성지순례를 겸한 이 여행을 꿈꾸었다.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맘껏 여행하면 좋겠지만 바쁜 일정과 한정된 자원으로 내 삶의 남은 시간 동안 가볼 나라들이 몇 개나 될까를 떠올리며 이집트, 뉴질랜드, 북유럽, 러시아, 그랜드캐년 등 몇 개국을 선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는 대학 교수님께서 아프리카 케냐에 함께 가자고 연락이 오셨다. 교수님은 물이 부족한 그곳에 깨끗한 물을 제공해주기 위해 댐을 만들어주는 봉사를 하고 계셨다. 그 편에 어학연수팀과 여행팀을 함께 데리고 가신다며 함께 가기를 제안하셨다.
평소 아프리카 미술을 좋아해 흑단인형과 가면을 사 모으는 취미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 여행을 갈 생각은 못 해봤다. 척박하고 위험한 그 땅을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이집트 여행을 꿈꾸고 계획했던 내게 아프리카는 생각해 보지 않은 여행지였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던 아프리카. 지금 아니면 일생에 단 한 번도 가 볼 기회가 없을 거 같아 마음을 결정했다.
그렇게 상상해보지도 못한 아프리카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현지인들과 함께 키트위 나이로비 대학 분교를 향해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다. 그 날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불타는 달을 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대한 붉은 달이 내 눈과 높이를 같이 하고 있었다. 신비하고 경이로운 이 광경을 딸과 함께 바라보며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달님의 추억을 쌓았다.
딸은 어학연수를 위해 기숙사에 학생들과 남겨두고 나는 여행팀과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부산 같은 화려한 몸바사 해변에서의 추억. 아침에 해변 산책을 나가니 날씬하고 건강한 검은 피부의 현지인들이 아크로바틱을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는 용맹함의 상징 마사이를 만날 수 있는 움바셀리 국립공원에서 그들과 함께 마사이 춤을 추었고, 사파리에서 코끼리 가족, 사자, 하마 등의 동물들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내 생애 다시 밟지 못할 이 땅의 모래와 화산석을 매만지며 내 추억의 한 자락을 깊이 새겼다.
봉고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는데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기린이 길을 막고 있으면 지나갈 때까지 케냐인 운전기사님이 기다리다 다시 운전을 하곤 했다. 이 기사님은 유쾌하고 재치가 넘치는 분이셨는데, 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며 양 일곱 마리를 주겠다고 하셨다. 현지에서는 양 세 마리면 아내를 구할 수 있다고 하니 꽤 비싸게 쳐준 셈인데 우리 여행팀은 나를 양 7마리에 넘기겠다며 한참 웃었다. 아프리카 여행은 내 삶의 단 한 번이다.라는 생각이여행에 충실하게 만들었다.
40도를 웃도는 고온에서 머리카락이 타버릴 듯 뜨거웠지만 습도가 낮은 현지에서 나무 그늘은 시원했고 밤이면 솜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추웠다. 가끔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피나 두터운 재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운 나라에서 왜 겨울 코트일까? 궁금했는데 이해가 됐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으면 석회석이 듬뿍 들은 물이 나왔고 그나마 잘 나오지도 않았다. 물 때문인지 피부는 거칠어져 갔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 윤기가 없어지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사우나에 가서 원 없이 목욕을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드디어 출국 날,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내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아프리카였으므로 나는 이 여행에 최선을 다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많은 것을 경험하려 했다. 함께 여행한 체육학과 교수님은 이 여행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라고 말씀하실 만큼 타인들의 눈에도 나는 여행에 꽤 충실하고 잘 즐기다 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빨리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다시는 못 밟을 땅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컸다. 아프리카여, 안녕!이라고 말하고 뒤를 돌아보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열흘간의 아프리카 시간들이 영화처럼 장면 장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감정은 후회였다. 최선을 다했고 남들에게도 여행을 즐길 줄 안다며 인정받은 여행이었지만 좀 더 용기 내어 더 많이 경험해볼걸. 여행 중 내 마음을 못마땅하게 한 사람에게 좀 더 관대할걸.이라는 2가지 후회감이 깊이 남았다.
그리고,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삶의 마지막에 지금 이 느낌, 이 생각이 들겠구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삶의 목표가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후회하지 않을 삶이 있을까?
후회가 남지 않을 삶이 있을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삶을 산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이라 해도, 온갖 것을 다 가져보고 누리는 삶을 산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분명히 후회는 남는 것이 완전하지 않은 존재인 인간의 삶일 것이다.
그러니 가장 후회를 적게 하는 것이 좋은 삶일 것 같다.
이후부터 나는 어떤 결정을 할 때 꼭 생각한다. 지금, 이 선택을 죽을 때 후회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내가 이 한 해를 산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잘 살아온 것이 맞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년 계획을 세운다.
아프리카가 내게 남긴 교훈이다.
인생은 한 번뿐인 여행이다.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남는다는 것.
가장 큰 후회는 좀 더 용기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하고 싶었던 것을 맘껏 도전하고 경험하고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좀 더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 건드려지면 당시는 내 감정에 빠져 곧잘 흥분 하지만 삶의 끝 지점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내가 관대하지 못하면 관계의 불편함이 생기고 그 불편함은 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갈등보다 좀 더 용서하고 이해하며 편안하게 잘 지내 볼 걸!이라는 후회가 분명히 들 것이다.
용기 내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고, 사람들에게 좀 더 관대하게 대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들로 삶을 채워나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