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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노래 Aug 15. 2022

사랑의역사#13


꿈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세상엔 지워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미장이 마르기 전 장난의 낙서, 리넨에 묻은 유성펜 자국, 나무에 새긴 혹은 패인 자국, 멋대로 각인된 나쁜 기억. 다만 잊힐 뿐, 어느 순간 공기, 바람, 냄새 등 사소한 것에 의해 언제든 부활하고 마는 것들. 상처 없는 연애와 바랄 것 없는 시간과 흐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까운 기억의 순간들은 연애의 꿈이었다. 잊힌 지 오래된.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생각이 났다. 그런 적이 없음을,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없음을. 아니 적음을. 생각할 것이 많았고, 계산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나이에 그런 것들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 꿈이 대통령이라는 어느 해맑은 친구의 꿈만큼이나 허황되었다.

허황된 것의 기준은 어디쯤일까. 수능점수에 한참 멀어져 있는 학교에 진학의 꿈은 차라리 명확했다. 나이, 지위, 수준(대부분 경제적인)에 의한 기준은 너무 상대적이라서 매일 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기준이 너무도 중요해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 오늘, 내가 꿈꾸는 대부분의 것이 허황의 영역이다. 그저 주어진 직업에 감사하며,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안온하고도 평온, 혹은 지루한 일상만이 허황되지 않는 유일한 것이 된 것 같다. 사랑이라고 별다르게 생각한다면 철없는 일이다. 조용히 살아가듯, 연애도 조용하게.

비가 그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하늘은 너무 서운했다. 왜 그렇게 뻔뻔한 거야, 너는.

뻔뻔하게 살아내고 또 살아갔으면. 허황된 것을 쫓는 마음의 단단함을 가지게 되기를. 언젠가 꿈을 이루게 되기를. 아니, 못 이루어도 뻔뻔하게 당당하길.

언젠가, 마음의 넘치는 폭풍이 다시 일어나길.


사랑의역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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