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에 7명이 같이 탄 적이 있었다. 다들 가까운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2시간 내내 노캔을 켜고 가사조차 없는 음악을 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날이었다. 여행의 시작, 빛나는 해, 가벼운 가방, 한 줄 구름의 가을 하늘. 가장 완벽한 순간에 나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저 노캔을 만들어서 살 수 있는 가격에 팔아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나의 해방 일지”에서 내가 위안을 얻은 장면은 염미정이 가장 고통스러운 대사를 읊조릴 때였다. 지긋지긋한 상처, 지겨운 이해, 끔찍한 사과.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스스로 위안했다.
하루의 끝에 들은 말과 내뱉은 말을 생각한다. 말한 것은 후회로, 들은 것은 화가 되는 늦은 밤엔 내일은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가능했다면 난 카니발에서 들떠서 수다를 떠는 사람이 되었겠지. 사람들은 왜 자기의 생각은 모두 조언이며 자신의 말은 모두 유익하다고 생각할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어느 날 밤에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 나도 그런 사람으로 하루를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밤. 달의 어스름마저 부끄러운 밤.
마음은 무인도를 꿈꾸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상한 마음. 어쩌면 나의 심연은 스스로를 역설 속에 밀어 넣고 가시를 잔뜩 세운 방어태세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위로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의식 있는 나를 갈아대며. 무의식의 나에게 호흡기를 쥐어주고 있는 거지.
“나의 해방 일지” 엔딩이 너무도 불편하면서, 너무도 마음이 든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호흡기를 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느 누구를 마음에 들어 할 수 있을까. 모든 말이 소음인데 어떤 말이든 마음까지 올 수 있을까.
나를 해치지 않는 유일한 물건인 따뜻한 라테를 든 채, 다짐한다. 오늘만은, 오늘만이라도 가드를 내리고, 노캔을 끄고, 마음을 열지 못할지라도 귀라도 여는 하루가 되길. 카니발의 닫힌 문이 더 이상 감옥 같지 않아 지기를. 유리로 만든 모든 벽이 실금이라도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