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서 살아남는 법
가끔씩 진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므로 진실이 존재할 수 없었다. 보이는 것 그대로, 듣는 것 그대로, 말하는 것 그대로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으면 진실은 그대로 사라진다. 짜고 매운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맛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검은색과 흰색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기로 하면 세상에 색채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내일의 말을 구분 짓기 시작하자 너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하다못해 떡볶이라도 좋아하던 브랜드를 바꾸면 미안한 감이 드는데, 너는 나를 상대로 말을 바꾸었다. 내 진심을 상대로, 내 희생을 상대로, 나의 감정을 상대로. 지고지순하였다가 원수가 되었다가 이제는 아무 인연조차 없이 되었다. 거짓말쟁이가 된 너를 견디는 것보다 진실을 모르는 것을 견디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았다. 나는 의심을 지웠다.
지운 것은 의심뿐인데, 표정이 지워졌다. 눈빛의 생각이 지워졌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지워졌다. 내일의 기대가 지워졌다. 거짓말쟁이를 구해낸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말해봐. 왜 나만 이래야 해.
아무것도 없는 눈으로 저녁을 지나간다. 악인에서 선인이 된 네가 날 구해야만 해. 끝없이 신호를 보내도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없는 너는 그 신호를 알 길이 없다. 그저 신호만이 허공을 채우고 매일을 채운다. 채워진 공간에 진실 따위 들어올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