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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Nov 27. 2023

아빤 마라톤, 딸은 마라탕

좋아하는 데 뭔 이유가 필요해

십 킬로 미터 마라톤 완주를 하였다. 지난 9월 중순 이 킬로 미터를 처음 뛰고 매주 토요일마다 오 킬로 씩 달렸으니 두 달만이다. 연습하는 동안 십 킬로를 딱 한번 뛰었는데 그때 얻은 자신감이 약이 된 듯하다.


'풀'을 뛰었냐, '하프'를 뛰었냐. 십 킬로 미터 완주 게 뭐 그리 대수냐고 그럴지 모른다. 맞다. 첫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여실히 확인했다. 나보다 빨리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참가자들이 나보다 늦게 들어온 참가자보다 많아 보였다. 삼 킬로 미터도 못 갔는데 오 킬로 미터 반환점을 돌아 내 앞에 나타난 러너들을 하나 둘 세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 아이고, 나는 언제 반환점을 도냐며 기운 빠지는 순간순간이었지만 같이 뛴 동네 형님을 뒤따르면서 계속 외쳤다.


"연습한 대로 뛰자고요. 지금 잘하고 있어요 우리!"


헥헥 거리며 나를 앞지르는 러너도 있지만 오 킬로 반환점을 도니 걷거나 헉헉 소리에 뒤처지는 참가자들도 생긴다. 쓰윽 봐도 이삼십 대가 팔 할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칠팔십 대 어르신들도 간간이 보인다. 유모차를 밀며 뛰는 부부, 손잡고 뛰는 젊은 커플, 중년 부부 등등.


 킬로 미터를 지나니 앞선 형님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뒤따라오기만 하면 정확히 한 시간에 완주한다는 페이스메이커의 뒤를 줄곧 따라왔지만 벅차 보였다. 칠 킬로 지점에 이르러 나는 형님에게 완주하자고 외치며 튀어 나갔다. 그간 연습한 페이스를 살짝 벗어나 주를 하였다. 한 시간 내로 들어오고픈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연습했던 나의 몸이 기억했다. 대가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일 킬로를 남겨 놓고 옆구리가 쑤시면서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걷지는 않았지만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저 멀리 희미하게 피니시 라인이 보이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 답답함이란. 아~윽! 아 쓰읍~~


결국 이분 삼십 초가 더 걸려 한 시간 내 완주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토요일 아침. 영하의 날씨에 손을 호호 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출발했는 데 완주를 하고 나니 입고 있던 후드티가 축축하다. 완주 메달을 받고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모를 희열이 쏴악 올라온다. 진전은 조금씩 있었구나. 연습한 만큼 나오는구나.

하체 단련 위주의 킥복싱 도장을 안 다녔으면 이 킬로 미터도 힘들었을 텐데 그간 참고 견딘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나 매력 있는 마라톤 세계로 안내해 준 온라인 이웃의 격려도 고마웠다. 앞으로도 주말마다 한 번씩 매주 오 킬로 미터를 뛰기로 했다. 내년 삼 월 이후 한 시간 내 주파를 목표로. 아저씨 둘이 소소한 성취를 자축하며 점심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 아내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딸이랑 마라탕 먹으러 왔어요"


며칠 전부터 마라탕을 사 먹자고 저녁마다 달달 볶더니 못 이겼나 보다. 집에서도 적잖게 해주는 데도 밖에서 먹는 마라탕이 맛있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딸은 노래를 한다. 마침 가있을 마라탕집이 카페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이야기도 끝나갈 무렵이겠다 혼자 차 몰고 털털거리고 갈 바에야 마라탕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문을 들어서니 모녀가 진열대에 놓인 음식을 집게로 고르고 있다.


"아빠, 다리 안 아파?"


그래도 딸은 딸이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킥복싱 도장에서 집에 돌아온 첫날 "아빠 코피 안 났어?"라고 물은 딸의 얼굴이 선하다. 근데 이번엔 아빠 다리 걱정이다. 애가 운동을 뭘 알까 싶지만 단순 명료한 직관적 질문이 강렬하다.


"딸, 마라탕이 뭐가 그리 맛있어?"


"어... 음... 맛있어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이야"


"글치. 아빠도 그랬어. 무슨 말인지 알아"


내가 마라탕을 처음 맛본 건 이십 오 년 전이었다. 한 입 물었을 때 그 독특한 맛을 잊기 어렵다. 딸만큼은 아니지만 마라탕이 지금껏 물리지 않는 까닭이다. 서로 콩깍지 낀 연인도 마찬가지다. 백날 옆에서 정신 차려라, 그러다 후회한다 충고한 들 당사자에게 씨알이나 먹힐쏘냐. 사람 좋아하는 데 구구절절 이유를 늘어놓을  뭐 있나.


좋아하는 데 뭔 설명이 필요할까. 마라톤 입문 두 달여지만 달리기에 점점 맛이 들린다. 그 나이에 무릎 나간다, 미세먼지가 폐에 박힌다 같은 찝찝한 말도 들리지만 뛰는 순간만큼은 무아지경에 빠지는 그 느낌이 좋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싫어져서 헤어질 결심이 설 때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좋다. 더구나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 개인의 기호나 취미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마지못해 하거나 유쾌하지도 않은 상황이나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기 십상이다. 스스로를 혼자만의 방에 완벽히 고립시키지 않는 한 걱정과 고민, 고통 따위는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혼자만의 세상도 답은 아니겠다. 불안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게 가능이나 할까? 맘먹고 안 그런 척할 뿐이겠지.


남편도 딸도 당신이 모르는 고충이 있을 테니, 마라톤 연습 한답시고 주말 오후에 가족과 시간을 덜 보낸다며 눈치 주지 말 것이며, 까닥하면  마라탕 언제 먹냐며 졸라댄다고 딸에게 호통치지 말라. 


하냐고 묻지도  마라. 좋으니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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