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철이 되면 임원실이 분주해진다. 보통 때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승진 인사를 앞두고 광경이 바뀐다. 결재판을 들고 부서장부터 주임까지 긴 줄이 늘어진다. 삼삼오오 같이 온 무리도 있고, 혼자 뻘쭘하게 서있기도 한다.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지방에서 근무하는 옛 선배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중요한 업무 보고를 경영진에게 한날한시에 하기로 약속한 걸까? 임원과의 미팅 여부와 시간은 보통 비서실을 통해 사전에 결정되니 이건 불가능하다. 기회는 이때다 해서 임원들에게 돌진해 눈도장을 찍으려는 거다. 물론 구실은 만들기 나름이다. 없던 업무 보고를 만들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 외는 사적인맥과 채널을 통해 임원들과 어떻게든 선을 연결해보려 한다. 몇 해 전부터 모든 직급의 인사가 임원들이 참여하는 인사평가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부서장이 아니라 임원들이 인사권자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임원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직원들이 많아졌다. 본사에 근무라도 하면 이런저런 업무 보고를 이유로 부서장 뒤에 졸졸 따라가서 눈도장이라도 찍을 텐데, 그렇지 못하는 지방 근무자나 소외 부서 직원들은 '그림의 임원'이다. A4 한 장에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을 박아 돌린다는 이야기도 심상찮게 들린다. 어떻게라도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승진 후보자들의 노력이 안쓰럽다.
승진 후보자로 올라오는 평가 대상이, 같은 직급에만 수십 명씩이니 임원들도 곤욕이다.세 배수 안에서 '공정하게' 재평가를 해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잘 아는 사람, 인상이 깊은 사람을 한번 더 살펴본다. 후보자로 올라온 직원들의 업무 능력은 다 그만그만하다. 때문에 누가 누군지와 얼마만큼 아는지, 나에게 괜찮은 인상을 줬는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이야기 #2 살인, 강도 위에 절도 있다
현직에 경찰 친구가 있다. 재수 시절 만난 녀석이니 삼십 년 가까운 우정이다. 수년 전 지구대에 근무하던 이 놈에게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경찰에 어떤 사건이 가장 많이 접수되냐고. 주저함 없이 절도라고 한다. 사실 이 절도는 경찰을 곤욕스럽게 만든단다. 신고는 접수하지만 범인을 잡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TV에는 살인, 강도, 성폭행 사건이 도배를 하지만 일선에서는 절도사건 때문에 행정력 소요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뉴스는 절도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는다. 공영성이다 공익 보도이다 하지만 방송국도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지하철에서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게 기삿거리가 될까? 가스 배관을 타고 들어온 도둑이 귀금속을 훔쳐갔다는 이야기도 어지간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 '대도' 조세형이나 신출귀몰 신창원 정도는 되어야 '절도의 맛'이 느껴질 판이다. 단독보도, 특종을 내세우며 선혈이 낭자한 살인 사건이나, 딸에게 못된 짓을 한 의붓아버지의 만행이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단골 소재가 된다.
이렇듯, 인간은 자주 보고 들은 사건이나 현상들은 쉽게 기억해 낸다. 기억에 따라 판단하는 게 정상이다. 기억이 안 나면 판단이 어렵다. 분명치 않은 기억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면 올바른 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찝찝함도 한몫한다. 따라서 스스로가 기억해서 알고 있다는 믿음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이 옳은 기억이든 잘못된 기억이든지 상관없이.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은 특정한 사례 또는 현상들이 머릿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느냐에 따라,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지를 만들고 평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용성'은 얻을 수 있는 것, 내 옆에 있어서 사용 가능한 것을 뜻한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총 없으면 맨주먹으로, TV에 나오는 송혜교보다 바로 옆에 있는 아내가 더 사랑스럽다 같은 논리이다. 기억(쉽게 떠오름)은 곧, 내가 바로 활용할 수 있음이다.
일부 무의식적 행동을 빼면, 인간은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즉 끄집어낸 기억에 따라 판단한다. 출처: Pixabay
우리는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걸 영상으로 봐왔다. 화재와 홍수의 피해도 크다는 걸 안다. 직간접 경험의 결과이다. 직립 보행을 하고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먹으며 집단생활을 시작한 선사 시대는 가용성 편향이 매우 쓸모 있었다. 맹수와 자연재해로부터 위험을 피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즉각 반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사숙고는 사치였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많을수록 존경받았다. 오랫동안 수많은 경험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보를 만들고 전할 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농경시대에, 노인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생활 지침이자 생존 도구였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보호하고 존중한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데이터와 소식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가 변용된다. 셀 수 없는 정보가 시시각각 눈과 귀에 꽂힌다. 정보 홍수를 넘어 대폭발의 시대이다. 당연히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내가 듣고 본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아리송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순간의 감정에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특성도 이를 부추겼다.
때문에 머릿속에 잘 떠오르는 기억이나 방법이 현실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연스레 많아졌다.
기막힌 경영 전략으로 창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도 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오늘의 전략이 내일은 구식이 된다. 상대 경쟁자와 소비자가 있는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칼을 갈아야 한다. 한번 고기를 베었다고 며칠 몇 달 칼이 잘 든다고는 법은 없다. 성공 경험에 자만하지 말고 시장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온오프라인 매체들은 끊임없이 광고를 해댄다. 광고를 접하지 않고 우리는 살 수가 없다. 대기업들은 비싼 출연료를 주어가며 톱스타급 연예인들을 섭외한다. 많이 알려져 소비자들의 머릿속에서 쉽게 '꺼내지는' 연예인들은 광고 성공의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제품이나 서비스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문제가 터진다고 광고 모델이 책임을 지진 않는다.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다. 터무니없고 맹랑한 소식임에도 여러 곳에서 반복해 보고 듣다 보면 "그럴까?, 진짜. 그런 거야 진짜?"라고 혹 넘어가기도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폐해를 우려하는 까닭이다. 수도 없이 떠들어대는 잘못된 소문이 그럴듯한 '정보'로 포장되어 멀쩡한 사람을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양치기 소년은 세 번째 거짓말을 하고 늑대에 잡혀 먹혔지만, 가짜 뉴스는 세번째 거짓말하고 엉뚱한 사람을 죽인다.
이른바 자기 계발서(how to book)의 이면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요즘 트렌드는 '나'다. 어느 곳에서든 내가 주인이 되자는 말이 홍수를 이룬다. 그렇지만 책은 책이다. 글쓴이의 생각은 글쓴이의 생각이다. 나의 생각이 곧바로 되기 어렵다. 주옥같은 구절을 읽고 밑줄을 쳐도 이게 내 마음속에 깊숙이 박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내가 주인이 되자'라는 말을 당장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지만 오늘도 남 앞에서 굽신거리며 소심하게 구시렁댄다면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렇게 가용성 편향에 사로잡히면 일반 원칙이나 확률, 통계 수치보다 최근에 발생한 구체적인 사건이나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린다. 최근에 접한 사건이나 경험은 당연히 쉽게 떠올리게 되고 설사 확률이 낮더라도 스스로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가족이 최근에 당한 교통사고,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책이나 영상에서 접한 뼈 때리는 팩폭으로 안전벨트를 좀 더 조이고, 나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며, 나태한 나를 고쳐보려는 마음이올라온다.
타인이나 현상, 사례를 판단하는 건 고도의 판단 과정을 요한다. 첫 느낌이나 막 떠오르는 기억만으로 충분한 일이 아니다.
고도의 판단 과정이 무용지물이 되는 극단적인 예는 축구 국가대표 감독에 대한 평가다. 월드컵 본선 16강에 오르면 모든 게 용서된다. 감독 부임 때로부터 거슬러가서 그간의 성적과 선수 운용 등이 미화된다. 하지만 조별 탈락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당초 감독을 잘못 뽑았냐느니부터 시작해서 인맥으로 선수를 데려왔다느니까지, 마녀 사냥이 따로 없다. 팬들은 오직 하나만 보고 감독을 평가한다. 가장 최근의 사건인 월드컵 성적, 그러니까 16강에 진출했냐 못했냐이다. 시작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최종 결과가 좋아야 시작과 과정이 빛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사건도 마찬가지다. TV 종편 채널에서 패널들이 나와서 대립각을 세운 채 허구한 날 떠들어봐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실보다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적의' 판단과 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만족할 만한' 판단과 결정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판단과 결정은 어찌 보면 조직을 운영하고 사회가 유지되며 국가가 존속하기 위한 '방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편향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 가용성 편향을 활용할 수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같은 외침이나, 긍정의 문장 쓰기 같은 연습이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절반이 안 된다. 하지만 "최근에 당신은 자녀와 즐거운 시간은 보냈지요? 그럴 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행복하다"라고 대답한다. 앞에 전제 조건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복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행복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자잘한 일들을 스스로 만들면 될 일이다. 예를 들면 토요일 아침 아내와 손잡고 산책하기, 아들딸과 동네 분식집 가서 골고루 주문해서 먹어보기, 어머니가 텃밭에서 캐온 감자 쪄 먹기 같이 일상의 사사로운 일들에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
상대방과 사건에 대한 태도와 달리 개인의 행복은 이렇게 다르다. "나는 행복하다"라는 생각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흙탕물에 발 담근 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못할 일도 안다. 쉽게 떠올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내 자유이기 때문이다.
행복감을 자잘하게 쪼개자! 그때그때 업데이트해서 최신 버전을 유지하자!
이것만 알자!
우리는 쉽게 떠오르는 기억이나 자신의 경험으로 현상을 판단한다.
그러나 시시각각 접하는 정보와 경험에 의한 판단이 항상 옳다고 할 순 없다.
상대방, 사건, 현상을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매우 복잡다단한 과정이다.
사실이 아닌 가치 판단의 문제에는, '최적'이 아닌 '만족할 만한' 판단과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 행복을 느끼고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