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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Oct 12. 2023

만원 전철에도 위아래가 있다.

내 쉴 곳은 있기나 할까?

지금은 자가용으로 회사에 오가지만,  달 전까지는 어림 두 해를 전철로 출퇴근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이야기이지만 붐빔으로 말하자면 공항철도(공철)와 9호선의 악명은 높다.


공철은 두 정거장, 9호선은 다섯 정거장을 타고 내렸지만, 나는 아침저녁이 괴로웠다. 오전 여덟 시가 조금 안돼 공철 플랫폼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다. 차량 한 대는 그냥 보내기 일쑤였다. 겨우 올라타더라도 되도록 남을 밀치지 않으려고 다. 하지만 등과 어깨가 부딪히는 건 피하기 어려웠다.


만원(滿員) 전철에 끼어 주위를 둘러본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북적이는 전철 안 상황에 관심이 없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거나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자는 건지 명상을 하는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몇 분이나마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한다.


앉진 못했지만 좌석 위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공간을 챙긴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은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온전히 서 있는 게 가능하다. 정류장마다 밀려들어오는 승객 때문에 등이 떠밀릴 때 주의가 흐트러지면서 남을 힐끗 쳐다보기도 하지만 금세 자신만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좌석 양 쪽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낀 자들은 또 어떤가. 이들은 서 있어도 불안하다. 잡을 만한 손잡이도 마땅치 않고 공간도 어정쩡해서 사방팔방 줄곧 신경 써야 한다. 때문에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 생기는 틈을 향해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자리가 나더라도 앉기가 어렵다. 자리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먼저라는 보이지 않는 룰 때문이다.


세상 가여운 자들은 바로, 양쪽 출입문 쪽 사람들이다. 이들은 물엿을 넣고 버무린 멸치볶음처럼 뒤엉켜있다.

일렬로 간격을 맞춰 앉거나 서있는 사람들과 비할 바가 못된다. 그야말로 중구난방 대혼란 상태이다. 이들은 서로의 몸에 기대어 속수무책 떠밀리지만 마땅히 발 디딜 공간이 없다. "아!, 아악!"같은 스타카토식 비명부터 "아이C 밀지 말아요", "에이 ㅂ"처럼 귀에 거슬리는 짜증들도 심상찮게 들린다. 향긋한 비누 내음 가득한 생머리 아가씨와 맞닿은 채 부대끼는 행운(?)도 있지만 푸석푸석한 수컷 냄새와 거친 호흡 소리를 참아내야 하는 게 십상이다.


밥벌이를 향한 출근길 여정은 이제 시작인데, 몸과 마음은 벌써 지쳐간다.


만원 전철이 정류장에 들어설 때 가장 무서운 건, 이 지옥철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려고 따닥따닥 길게 줄 선 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전철 안의 사람들과 전철 밖의 사람들의 치열한 눈싸움이 시작되고 긴장감이 치솟는 순간이기도 하다.


출처: Pixabay


이리저리 등 떠밀려 공철에서 튕겨 내리면 바로 맞은편 9호선 플랫폼으로 부리나케 뛴다. 사람들이 없거나 길게 서 있어도 달려야 한다. 사람이 없으면 한 번에 타지만 길게 늘어서 있으면 전철을 한두 차례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푸시맨'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출입문 안으로 철가루가 자석에 붙듯 빨려 들어간다. 잡채를 시뻘건 돼지 창자에 쑤셔 넣어 만든 순대 같은 전철 칸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채워진다.


9호선에 올라타도 방금 내린 공철 안에서의 풍경이 반복된다. 앉은 자부터 서 있는 자, 이들 양쪽에 끼어 있는 자, 그리고 출입문 쪽에 엉겨 붙은 자. 만원 전철에서도 공간이 나뉘고, 공간도 같은 공간이 아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전철 안에 사람도 적어 느긋할 텐데. 누가 그런 걸 모를까. 하지만 여유 있게 출퇴근하려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회사에 일찍 가고 늦게 집에 갈 사람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오히려 회사에 늦게 출근해서 빨리 퇴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것도 여의치 않고.


이래저래 시간에 끌려다니고, 옴짝달싹못했던 ,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내가 편히 앉아 쉴 곳은 있기나 한 걸까?


만원 전철 안도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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