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진주 May 26. 2021

"역시 딸이 최고라니까."

딸을 위한 책


늘 나였다.


고모가 공연히 생트집을 잡거나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나를 찾았고, IMF 이후로 기울어진 집안 사정을 솔직히 토로할 때 아빠는 나를 찾았다. 나와 오빠의 존재가 아니면 엄마와 아빠는 이미 이혼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고 남에게 말 못 할 일들, 부모님의 무거운 진심, 갖가지 비밀들은 어김없이 내 귀로 들어왔다.


그 무렵 그런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이불속에서 몰래 울곤 했다. 숨죽이고 울 때는 수건을 깔고 자야 한다는 요령을 터득한 게 그때였다. 함께 어렸던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나에게도 그건 나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처럼 느껴졌으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걸 들어주겠어



나는 아주 눈치 빠른 애로 자랐고, 집의 분위기가 가라앉을라치면 천진하게 굴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잘 지내다 보면 부모님이 끝내 이혼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힘든 시기가 지나간 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재롱을 부렸다.


유명한 개그맨을 곧잘 따라 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드라마 주제곡을 봐 두었다가 따라 불렀다. 

내가 우리 집을 더 화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나의 서글픈 광대짓은 꽤나 잘 먹혔는지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몹시 사이좋게 맞장구를 치곤 했다. 



"아이고 이쁜 내 새끼. 요고 없으면 어쩔 뻔했어?"


"아들만 둘 키우는 집들은 절간만치 조용 하대."


"부모 늙으면 노인네 챙기러 오는 것도 다 딸내미들이야. 아들이야 장가가면 남이지 뭐"


"역시 딸이 최고라니까."




작품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양육자들이 딸에게 전하는 말들을 대사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고
글은 작가의 경험담을 엮어 Faction으로 풀어낸 실제와 섞인 이야기들입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의 딸로 자라온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말들이고,
그 바탕에 깔린 애정이 큰 탓에 딸들은 이와 같은 메시지를 쉽게 내면화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든 간에, 또 어떤 불합리를 수반하든 간에 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