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이틀 여섯 끼
고립된 섬사람의 밥상은 어떠했을까. 무얼 먹고 살았을까. 땅밭, 물밭, 우영팟에서 무엇을 기르고 캐고 걷었을까. 밥상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제주 섬사람의 밥상에서 그들의 삶을 함께하고 싶었다. 생애 첫 ‘맛집’ 기록을 한다. 물론 공인된 맛집이라기보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 만난 곳이다. 제주인의 전통적인 쏘울 푸드를 만날 참이다. 제주도 제주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와 고급 식당을 찾지 않았다. 식비로 과도한 비용을 치르지 않았다. 뚜벅이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나름 가성비 최고, ‘제주 밥상’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가게를 기록한다.
# 한 끼, 낭푼밥상
“한 그릇에 담은 밥을 같이 퍼 먹으며 목숨을 함께 부지해나간다”
양용진 셰프는 ‘낭푼밥상’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낭’은 나무이고, ‘푼’은 푼주, 즉 그릇이다. ‘낭푼’은 밥을 퍼 담은 공동의 밥그릇이다. 섬사람의 밥그릇은 하나이다. 쌀이 귀해 보리를 주식으로 썼다. 보리조차 없을 때는 메밀, 팥, 고구마, 쑥, 무를 섞어 밥을 지었다. 요즘이야 별식이겠지만, 톳밥과 모자반밥과 같은 해조류 밥상을 차렸다. 어른아이, 남자여자, 너나 따지지 않고 하나의 낭푼에서 밥을 덜어 먹었다. 삶과 목숨을 함께 지키며 나누는 운명 공동체였다. 섬사람은 밥상을 차리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섬사람에게 요리랄 건 딱히 없었다. 먹는 일을 ‘확확’ 해치워 버린다. 국 한 그릇 먹는 동안에도 밭일, 물일 생각이었다.
첫날 첫 밥상은 특별하게 준비하였다. 낭푼밥상의 ‘명인코스’는 섬사람의 일상 밥상이 아니다. 잔칫집과 상갓집, 차례상에 올린 손님 접대용, 조상 섬기던 음식이다. 제주의 전통 식자재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밥상이기도 하다. 집에 기르던 돼지를 추렴해 ‘괴기 반(돼지고기 수육)’을 내고 ‘구쟁기적(소라 산적)’을 지졌다. 고사리, 쪽파, 돼지고기를 다져 고사리전, 미수전, 느르미전을 부쳤다. 돼지를 추렴해 남은 뼈는 모자반을 넣고 푹 고와 몸국을 우리거나, 고사리나 무를 넣어 고사리육개장이나 접짝뼈국을 손님에 내었다. 동네 아이들은 '베지근한' 고기 한 점 먹을 요량으로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낭푼밥상은 제주의 일상과 특별한 음식을 추려 정갈하게 내놓는다. 당신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따듯하게, 큰 손님으로 정중하게 대접받을 것이다.
# 두 끼, 고기국수
국수는 경사를 상징한다. 잔칫날은 국수 먹는 날이다. 둘째 날 아침, 부스스한 모습이지만 잔칫날 손님처럼 제주시 동문시장을 찾아 나섰다. 고기국수와 제주 막걸리를 들이킬 참이다. 제주에는 고기국수로 유명한 가게가 몇몇 있다. 내가 찾은 곳은 동문시장의 로컬 맛집인 동진국수다.
제주 고기국수의 역사는 아마 100년쯤 되었을 것이다. 고기국수는 일제 강점기 일본이 들인 건면으로 시작된 음식이다. 1920년대 제주시 관덕정을 중심으로 동문시장 앞 칠성로, 서문시장 앞 북신작로 일대에 저잣거리가 형성되었다. 제주 최초의 건면 공장인 ‘석산이네 국수공장’이 이 근방에 있었다. 이 동네 어르신의 구술에 따르면, 당시 이곳 저잣거리에서 국수를 먹었다는 증언이 있다. 고려 말 몽골에서 들인 메밀로 칼국수나 ‘조베기(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섬사람에게 일본 건면의 부드럽고 탱탱한 식감은 신세계였을 것이다.
동진국수는 돼지고기와 갖은 채소를 삶은 육수를 사용한다. 육수가 잘 끓으면 1947년부터 국수를 뽑았다는 ‘한성국수’를 한 움큼 넣는다. 한성국수 공장은 한국전쟁 때 동문 로터리에서 국수를 팔던 집이다. 지금도 제주의 이름난 고기국수 가게는 한성국수를 받아 쓴다. 잔치국수의 가는 소면에 익숙한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의 중면이 낯설겠지만, 부드러운 고기 한 점과 중면의 두툼하고 쫄깃한 면발, 제주 막걸리 한 잔이라면 제주 고기국수 100년의 역사를 맛보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출출한 시장의 아침이 있을까. 오늘 하루는 국수 한 끼로 마무리해도 좋겠다. 오전 내내 깊은 잠에 빠졌다.
# 세 끼, 제주 순대 ‘수애’
섬사람은 ‘베지근하다’는 말을 즐겨 쓴다. 고기 따위를 끓인 국물에 진한 맛이 있거나, 살코기와 비계가 반반 섞인 돔베고기를 크게 한 입 간장에 찍어 먹거나, 혹은 북조기('눈볼대'의 제줏말) 같은 기름진 생선이 혓바닥에 닿아 번지면 ‘베지근하다’고 표현한다. 육지 사람은 느끼하다 할 수 있겠으나, 섬사람의 쏘울 푸드는 거의 베지근한 맛이다. 그런데 베지근한 맛의 마침표를 찍는 것은 바로 메밀이다. 낭푼밥상에도 봤듯이 몸국, 고사리육개장, 접짝뼈국의 진하고 깊은 맛은 메밀 때문이다. 메밀은 베지근한 음식을 한 차원 높이 베지근하게 만든다. 후루룩 먹어도 속은 편안하다. 메밀에 삶은 제주 무를 말은 빙떡, 메밀과 무를 푹 끓인 메밀 조베기, 메밀로 부친 고사리전, 메밀을 흩뿌린 온갖 나물, 메밀 쌀죽, 메밀 밥, 메밀 묵적, 송애기떡 등등. 메밀이 들어야 비로소 ‘참, 베지근하다’고 깊은 맛, 깊은 숨을 들이쉰다.
선지와 메밀을 채운 베지근한 ‘제주 순대’
눈을 뜨니 다시 허기가 찾아왔다. 아, 이토록 놀라운 소화력이란. 주섬주섬 챙겨 입고 ‘또 먹어보자’며 보성시장으로 갔다. 이곳은 허영만 ‘식객’에 소개된 제주 순대 특화 시장이다. 양순이네 순대, 감초식당 등 순대 전문집이 몇 겹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장 한 바퀴 돌면 어느 순댓집으로 가야 할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식당 안의 분위기, 그리고 식당 밖으로 흐른 향에서 '그 식당의 맛'을 가늠할 수 있다.
섬사람은 순대를 ‘수애’라고 부른다. 제주 순대는 메밀이나 보릿가루를 선지와 섞어 만든다. 쌀로 만드는 육지 순대와 달리, 퍽퍽하고 꼬들하게 말린 식감이다. 수애는 잔칫날 돼지를 잡아야 함께 만들 수 있는 잔치 음식이다. 뼈로 국을 끓이고 선지로 수애를 만들었다. 몇 날 며칠 먹어야 하기에 물기 많은 채소나 다른 고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장성이 있어야 한다. 쪽파와 마늘을 양념으로 조금 넣을 뿐이다. 시대에 따라 맛은 변한다. 보성시장 제주 순대의 맛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쯤에 있다. 빛깔 잘잘 흐르는 현대식 제주 순대에 제주 한라산을 몇 병 마셔 버렸다.
# 네 끼, 각재기국
새벽 일찍, 제주시 서부두 수산시장을 찾았다. 탑동광장 옆에 있는 수산물 경매장인데, ‘당일바리’ 생선의 경매 장면을 볼 수 있고 싱싱한 생선을 구해 육지로 보낼 수도 있다. 섬사람의 ‘물밭’ 식자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수산물은 경매 후 곧바로 인근 시장을 거쳐 밥상에 오른다. 고등어, 전갱이, 옥돔, 갈치, 참돔 등 제철 수산물이 가득하다. 고기잡이에서 경매를 거쳐 밥상에 오르기까지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각재기국’은 찬물에 전갱이와 배춧잎을 넣고 끓여 된장으로 마무리하면 끝이다. 전갱이는 당일바리 생선으로 구했고, 배춧잎은 집 텃밭인 우영팟에서 땄다. 제주 토종 푸른독새기콩을 사용해 만든 푸른콩장을 넣었다. 각재기국은 비리지 않다. 탱글탱글한 전갱이 육질, 달곰한 배춧잎, 깔끔한 단맛의 된장이 잘 어울린다. 극히 단순한 조리법이지만 시원하고 맛있다. 콩잎, 배춧잎, 고추를 따내고, 잘 삭혀둔 멜젓과 갈치속젓을 담고, 날된장과 함께 밥상에 올렸다. 젓갈의 재료인 샛줄멸과 갈치는 초여름 그물과 낚시로 걷은 것이다. 섬사람의 밥상 재료는 땅밭, 물밭, 우영팟에서 나온다. 시장도 마트도 없었던 섬사람에게 집 텃밭인 우영팟은 사사사철 푸른 잎 채소를 공급하는 유기농 시장이었다. 자기 식구가 먹을 채소를 직접 길렀다. 더불어 우영팟 채소를 나누며 옆집 삼촌의 안부도 물었다. 각재기국 전문점은 제주시에 여럿 있겠지만, 내가 찾은 집은 ‘뽕이네 각재기’이다. 아침 일찍 각재기국 집에는 동네 삼촌, 하르방이 식사를 하신다.
전갱이는 고등어와 더불어 국민 생선이다. 고등어는 가을 지나 겨울로 접어가는 시점에 살이 오를 때 국을 끓여 먹었다. 전갱이는 제주에서 사시사철 잡히고 언제고 끓여도 좋았다. 각재기국은 빈부 없이 누구나 즐기는, 섬사람의 ‘최애 생선국’이다. 각재기국 한 그릇이면, 제주의 물밭과 우영팟은 물론 제주 할망과 옆집 삼촌의 주름진 인생도 당신에게 스며들 것이다.
# 다섯 끼, 갈칫국
표층 수온이 18℃ 이상 오르는 6월부터 제주 바다는 고등어, 한치, 갈치 떼를 쫓아온 고깃배의 집어등으로 불야성이다. 제주 북부 도두항과 제주항, 서쪽의 애월항과 한림항, 동쪽의 김녕항과 종달항 선단은 해질 녁 일시에 바다로 향한다. 6~8월은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올라온 산란기 한치, 9월 이후로는 살이 오른 갈치를 집중적으로 잡는다. 늦여름 어군탐지기를 보면 수면에는 고등어와 삼치, 수심 30미터 전후는 한치, 5~60미터 전후는 갈치 어군이 층층이 가득 보인다.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면 갈치 살에 기름이 오르고 우영팟 돌담에는 늙은 호박이 누렇게 익어간다. 갈칫국이 가장 맛있을 때는 바로 이때다. 추석 벌초 길에 조상 걱정보다 갈칫국에 입맛 다시는 이들도 꽤 많다. 제주의 갈칫국은 다른 지방의 생선국과 달리 맑은 국이다. 섬사람은 신선도가 담보되어야 끓일 수 있는 갈칫국, 각재기국, 옥돔국, 고등엇국을 곧잘 끓였다. 손질한 생선에 늙은 호박이나 배춧잎, 매운 고추 한두 개 썰어 넣으면 끝이다. 복잡한 양념이 필요 없다. 물질 나선 제주 해녀는 작살로 쏜 물고기를 큰 들통에 미역과 넣고 푹 끓여 지겹도록 먹곤 했다.
갈치는 흔하디 흔한 생선이었다. 여름날, 갈치 배는 낚시로 하나씩 갈치를 낚아 올렸다. 성질 급한 갈치는 이내 죽어버린다. 갈치 조업을 마친 옆집 어부는 갈치 망태기에서 한두 마리 꺼내 할망네 부엌에 두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갈치는 kg당 5만 원을 훨쩍 넘는 고급 생선이 되었다. 게다가 당일바리 싱싱한 갈치는 금값이다. 한 그릇 갈칫국을 동문시장 고객식당에서 들이키면서 제주 바다, 우영팟 호박, 옆집 어부와 할망 생각을 해 본다.
나서는 길에 동문시장 남해수산에 잠깐 들렀다. 올 때부터 봐 둔 집이다. 제철 부시리와 벤자리, 한치를 한 접시 만원에 구할 수 있다. 만 원짜리 한 접시에 부시리 등살, 대뱃살, 가마살까지 넣었다. 이쯤이면 오늘 밤도 충분히 괜찮을 것이다.
# 여섯 끼, 전복죽과 전복물회
섬사람의 날된장 사랑은 유별나다. 밥상에 오른 거의 모든 국에 된장을 넣었다. 특히 제주 특산인 푸른독새기콩으로 만든 푸른콩장은 섬사람의 쏘울 푸드이다. 된장을 찬물에 풀어 자리냉국, 한치냉국을 말았다. 각재기국은 된장으로 간을 했다. 자리돔, 황놀래기와 같은 물고기도 뼈째 썰어 된장을 풀었다. 자리물회, 어랭이물회는 푸른콩장과 쉰다리 식초에 마늘, 부추, 풋고추, 깻잎을 썰어 넣었다. 생선 가시가 잇몸에 박히는 고통과도 맞바꿀 맛이라고 했던가. 구쟁기(소라)물회, 전복물회의 조리 과정에도 된장은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섬사람의 땅밭, 물밭, 우영팟에서 가장 귀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전복일 것이다. 전복은 조선 시대 임금 진상품으로 매우 귀한 몸이었다. 제주에서 내노라하는 상군 해녀는 손바닥보다 큰 자연산 전복을 채취해 제주 목사에 올렸다. 전복은 해녀에게 고난의 상징이었다. 임금에게 바치던 것이기에 함부로 먹지 못했고, 더 좋은 전복을 캘 때까지 물질은 계속되었다. 말, 흑돼지, 사슴, 표고버섯, 감귤 등 제주 진상품은 잘 손질한 전복의 악세서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제, 전복죽과 전복물회는 서민들도 쉽게 접하는 음식이 되었다. 30년 전 시작된 전복 양식 덕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이유로 제주의 자연산 전복은 거의 사라졌다. 제주 동문시장에서 팔리는 전복도 대부분 완도산 양식 전복이다.
만 이틀의 마지막 밥상은 전복죽과 전복물회이다. 제주시 도두항에 위치한 ‘도두해녀의집’은 마을 분들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소문이 쫙 퍼진 곳이다. 전복죽, 전복물회 한 그릇이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누구나 임금이고 최고가 된다. 제주 물밭의 으뜸을 취한 셈이다. 게다가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바라보는 도두항의 장엄한 노을 속에 근심 걱정은 싹 사라질 것이다.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겠는가.
만 이틀 여섯 끼
지금의 제주 식탁은 과거와 많이 변했다. 낭푼밥상의 공동체 밥그릇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졌다. 잔칫날 돼지를 잡던 총지휘자 ‘도감’도 거의 없다. 제주 해녀는 제주의 멸종위기종 제1호가 되었다. 제주의 전통적인 물밭, 땅밭, 우영팟은 기계농과 공장식 축산의 도입, 경제 패턴의 변화, 기후위기 등 내외부 요인으로 제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한 그릇의 섬사람 식탁에서 제주의 원형을 보고, 지켜야 할 가치와 나아갈 삶을 알아차린다. 땅과 바다, 나와 너, 옆집 삼촌과 우리의 존재를 고맙고 귀하게 바라본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은 각자의 자리가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 그들이 무사하면 좋겠다. 만 이틀 여섯 끼를 먹었다. 제주를 오롯이 다 먹은 줄 알았지만, 아직도 허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