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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Aug 16. 2021

나는 '규격 외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때 “고양이는 어떻게 우나요?”라는 시험 문제가 나왔습니다. 정답에는 두 개의 칸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두 칸 뒤에 네모를 하나 더 그리고 ‘이야옹’이라고 썼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나는 ‘규격 외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네모 칸에 안 들어가는 나를 더 많이 공감해주고 더 예뻐해 주고, 세상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더 멋지게 변화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세상의 규격’이란 관점에서 보면 부족하고 잘못되었고 부서지겠지만, 좌충우돌 무지갯빛 구체적 삶을 살아가는 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흔들리면서 나아가는 규격 외 사람의 삶은 옳았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정답입니다.      



사실, 세상의 규격으로 우리 곁의 보통 사람, 자연과 생명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규격은 최소 노동에 최대 효과, 비용 대비 효율, 이윤 추구를 위한 몰입, 딱딱하게 일어서는 문명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삶’, ‘자연의 아름다움’은 문명이나 세상의 규격으로 묘사될 수 없겠지요. 오히려 삶과 자연에 깊이 빠져들어 직접 몸을 담그는 그 순간, 세상의 존재를 또렷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딱딱한 규격은 세상을 한 길로만 설명합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여러 갈래의, 모르지만 흥미진진한 길이 놓여있습니다.     



규격 외, 바깥, 주변, 타자라고 무시되는 생명의 존재를, 조율과 공감의 아름다움을 직관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규격 외 자연’의 상호 관계성, 상호 역동성을 주목하고 기록합니다. 봄철, 섬진강 산란기 황어 떼의 ‘따로 또 같은’ 유영을 본 적이 있는지요. 가을철,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순천만 흑두루미의 비행과 착지는 또 어떤지요. 새만금 갯벌의 도둑게와 칠게의 소통하는 듯 일괄적인 움직임, 제주 선흘 동백동산 먼물깍 습지를 감싼 개구리와 새 울음의 시작과 멈춤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은 정직한 삶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규격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사람과 자연의 진정한 존재, 그 ‘개체성’의 의미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이 글의 에피소드는 미술치료사이며 생태 예술가인 정은혜 작가의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싸움의 기술: 모든 싸움은 사랑이야기다]에서 대부분 따왔습니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세상의 규격을 따르지 않기에 잘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규격화된 세상에서 마땅히 실패할지 모릅니다. 절망스러운가요? 그렇지 않아요. 실패조차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문을 열면 작은 뒤뜰이 있었는데, 거기에 꽃을 심었어. 나는 어디서든 꽃밭을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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