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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May 16. 2023

관탈도, 화급히 벗어나야 하는 섬

애월 출신 선비 장한철이 쓴 [표해록] 속의 관탈도

제주도 향시(지방 과거시험) 1등을 한 애월 출신 장한철은 한양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배에 오른다. 제주도에서 전남 소안도를 거쳐, 완도에서 한양까지 목숨 걸고 가는 길이다. 1770년(경인년) 12월 25일, 바다에 해가 처음 떠오르자 남풍이 잠깐 일었고 모두 29명(사공 1명, 노잡이 9명, 제주 상인 15명, 육지 상인 2명, 장한철과 친구 1명)이 한배를 타고서 닻줄을 들어 올리고 출항한다. 훗날 장한철은 이 부분에 댓글을 달았는데, “가련하도다, 절반이 죽어 귀신이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실제 살아서 고향 제주에 돌아온 사람은 단 7명뿐이었다.


장한철 [표해록], "가련하도다, 절반이 죽어 귀신이 되었구나"
제주 관탈도를 지나 사수도 인근에서 바라본 여서도 일출


장한철이 쓴 [표해록]은 제주와 동남아 바다를 표류한 기록이다.

일행은 관탈도를 지나면서 바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는다.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너기 아주 위험하고 해가 저물었으니 추자도에 배를 잠시 정박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사공은 곧은 길을 놔두고 둘러 추자도로 향하는 것은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라 반박한다. 전남 완도 소안도 방향으로 가던 배는 이내 높은 파도를 만나 노화도 인근에서 표류한다. 강한 동풍과 북풍을 만난 일행은 차귀도 서쪽 바다로 휩쓸려 호산도(대만)와 유구(오키나와)에 표류하고 베트남 상선에 구조되어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다.


추자군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배가 나는 듯이 빨리 나아갔다. 바닷물을 보니 하늘과 한가지 색깔이었고, 배는 허공에 있는 듯했다. 한 점 한라산이 점점 아득한 곳으로 사라져갔다. 갑자기 바람이 잠깐 멎더니, 바람 불 듯 비 올 듯하며, 바람 형색이 가히 괴이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파도에 따라 머뭇거렸다. 하늘은 높고 바다는 넓어 끝도 없이 망망했다. 멀리 보이는 몇몇 섬이 붓끝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리 있는 돛배처럼 보이기도 했다. 곧 작은 관탈섬과 큰 관탈섬이다.”
(표해록, 8~10쪽)     


“제주로부터 배를 출발시켜 북쪽 육지를 향하게 됩니다. 배가 바다 반쯤에 오면, 서쪽으로 큰 관탈섬과 작은 관탈섬을 지나게 되고, 동쪽으로 여서도와 청산도를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자고 물결이 조용한 때라도, 바다 형세는 필시 넘실거리며 휘돌아 급히 흐릅니다.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위험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소위 해저에 있는 봉우리와 골짜기들이 파도를 격렬하게 만드는 증거입니다.”
(표해록, 87쪽) 
대관탈도
대관탈도는 제주와 대륙, 생사 사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섬이다.
소관탈도, '해암도'로 불리며 대관탈도와 대략 10여 킬로 떨어져 있다.


관탈도는 제주와 대륙, 생과 사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섬이다.

김훈은 [흑산]에서 붉은 바다, 검은 바다를 다 지나면 하얀 바다로 불려간다고 했다. 하얀 바다 저편에 [흑산]이 있는데, 제주 사람에게 관탈도는 하얀 바다에 있는 섬이다. 관탈도는 화탈도(火脫島)라 불렀는데, 한자 그대로 풀면 온도가 다른 큰 해류가 서로 뒤섞여 ‘화급히 벗어나야 하는 섬’이다. 조선 중기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원진은 [탐라지](1653)에서 대관탈도와 소관탈도 사이에 물의 흐름이 교차해 파도가 들끓어 오르니, 배들이 표류해 익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표해록] 12월 30일 기록에도, 사공 이창성은 이 근처의 물살이 흉용해 뱃사람들이 모두 이 근처를 위험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장한철 일행은 서쪽으로 대관탈도와 소관탈도를 지나 바다를 건너고, 동쪽으로 여서도와 청산도를 가늠해, 북쪽의 소안도와 노화도를 최종 목적지로 잡아 뱃머리를 향한다. 사수도 바다를 지나면서 표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관탈도는 대관탈도와 소관탈도로 이뤄져 있는데, 대관탈도는 제주도에서 30km, 추자도에서 24km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은 추자면 묵리 144번지와 143번지이다. 대관탈도는 ‘화탈(化奪)’ 또는 ‘화탈’(火奪)이라고도 했으며 '화탈(火脫)'과 같은 뜻이다. '곽게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반면 소관탈도는 ‘해암도’로 불리며 대관탈도와 대략 10여 킬로 떨어져 있다. 제주도에서 추자도로 가려면 관탈도, 중뢰, 절명이(절명서 絶命嶼)를 거쳐야 한다. 절명이는 제주도 추자군도(추자면 신양리 산157)에 속하는 무인도로 추자도 남쪽 약 7km 떨어져 있다. ‘절명’은 말 그대로 목숨이 끊어지는, 죽는 섬이라는 뜻이다. 바위의 형상이 떨어지면 죽을 만큼 험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절명서(절명이), 목숨이 끊어지는 섬
절명서의 모양새에서 죽음을 연상할 수 있을 듯하다.


관탈도의 전설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1) 추자십경 중 제9경 ‘곽게창파’에서 옛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면 이제부터 유배지로 들어온 것으로 간주하여 '머리에 쓴 갓을 벗었다'(관탈, 冠脫)는 이야기가 있다. 곽게섬(관탈도) 부근의 푸른 물결이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르는 모습으로 고도창파(孤島蒼波)라고도 한다.

2) ‘추씨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옛 관탈도는 ‘환락도’, 즉 타락한 섬이었다고 한다.

3) 설문대할망의 설화에 한 발은 장수물에 다른 한 발은 관탈섬에 디디고 빨래를 했다고 한다.


절명서에서 제주 한라산을 바라보면 오른쪽에 중뢰가 있고, 한라산 아래에 대관탈도가 있다.


장한철 일행의 표류가 시작된 사수도는 제주도 추자면(예초리 산121) 관할이다.

전남 완도군은 사수도를 ‘장수도’라 부르며 관할권을 주장했으나, 2008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사수도가 제주도 관할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조선의 여러 기록이 사수도를 제주도 관할로 증명하고 있었다. 사수도는 섬 전체가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3호로 흑비둘기와 슴새 등 바닷새류의 번식지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일반인이 출입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추자도 해녀들은 매년 이곳에 일주일씩 지내면서 전복, 소라 등 해산물을 채취하며, 주변 해역은 연간 500억 정도의 어획고를 올린다고 하니 천혜의 어장이다. 무인등대, 표지석, 화장실, 해녀이용숙소, 거주흔적 집터 등이 사수도에 있다. [탐라지]에 따르면 “섬에 샘이 있고 섬 남쪽에 어선이 떼 지어 모여든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 슴새) 번식지



장한철이 표류한 바다.

제주 추자면 관탈도, 중뢰, 절명서에서 보지못한 대부시리를 2023년 5월, 사수도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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