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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Jun 14. 2024

성북구의 기억

<조선미술사>를 읽고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우연히 지나간 마을, 성북구 정릉을 보며 결혼하면 이런 동네에 살고 싶다고 했다. 북한산을 끼고, 동네를 가로질러 개천이 흐르고, 작은 시장이 있었던 동네. 소원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북한산 아래 정릉천이 흐르는 골목. 그 언덕에 있던 낡은 연립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번째 연립주택에서 첫째가, 시장 한 가운데 골목 작은 집에서 둘째가, 그리고 재개발이 언제될 지 몰라 집주인이 신경쓰지 않았던 전세집에서 셋째가 태어났다.

  

성북구. 그 동네가 나는 참 좋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간송미술관이었다. 유치원생인 딸과 함께 찾아간 5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서둘러 갔어도 2시간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봄이라 해도 그늘 하나 없는 골목길 뙤약볕에 어린 딸과 함께 서 있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시된 작품도 간송선생의 인생도 나의 열정도 모두 보물처럼 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곳이 바로 10년 전의 간송미술관이다. 그 이후 나는 간송미술관이 있는 성북구에 산다는 것이 하나의 자부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 기억을 안고 책을 펼쳤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과그의 재능을 사랑한 정조임금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조선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김홍도의 그림과 이야기는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된다.


책 속의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

  <포의풍류>, 벼슬없는 풍류 화가. 작품 속 주인공은 김홍도일 것이라고 한다. 그림뿐만 아니라 생황과 비파를 비롯해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고 하니 김홍도는 조선 시대 진정한 천재 예능인이었나보다. 그림 속에서 선비가 되고 싶었던 중인들의 욕망을 읽어내는 작가의 해석도 인상깊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표정까지 저자가 세세하게 해석해 놓았기 때문에 그림보랴 글 읽으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된다.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한평의 <자모육아>. 부인과 삼남매를 그린 그림 속 인물들은 분명 그의 가족일텐데. 그림 속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신윤복은 막내에게 엄마 사랑을 빼앗긴 영락없는 둘째의 모습이다. 가장 엉뚱한 우리집 둘째의 모습도 겹쳐져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게 되는 그림이었다.

  조선시대 천재 화가들의 그림과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 만나니 조선시대 고미술 속 이야기도 참으로 쉽고 재미있다. 책을 읽는 재미도 그림을 보는 재미도, 나의 신혼을 떠올리는 재미도 더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나갔다. 간송미술관을 비롯해, 최순우옛집, 성곽길, 정릉, 길상사. 남편과 동료들과 함께 걷던 추억의 장소들이 떠오르니, 마음이 또 여기저기로 흘어진다. 많이 사랑했고, 그러해서 그리운 곳. 성북구의 기억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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