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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Apr 12. 2024

정치이야기만 하면 왜 싸울까?

지난주 내내 총선이 이슈였지만, 국회의원 당선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라는 생각이 앞서 관심에 선을

그으려 했지만, 좀처럼 관심을 끊지 못하다가 결국은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총선결과를 지켜봤다.

정치만 이야기하면 자기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 생각했었다. 정치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몰입에 대해서..

때로는 깊게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어느 글 하나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요즘도 종종 정치에 대한 감정의 과몰입에 대해서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에 관해 말할 때의 태도를 보면, 분노에 찬 원초적인 감정을 드러내면서

숨기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 점을 생각하면, 정치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가까운

행위로 보는 것이 맞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정의 영역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대리인인 의원, 대통령을 뽑는 것이 일반인이 정치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지만,

과거에는 집단에서 자신들이 토론과 결정에 직접 참여했을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집단의 생존, 운명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운명도 함께 맡기는 중대한 사안이다.

자신의 생존이 달린 사안이기에 다른 의견과 결정에는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집단의 의사결정이 이제는 인구가 늘어나 대리인을 통해 행해지고, 대리인들은 정당이라는 

집단을 구성한다. 정당이라는 집단은 집단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규정된 성격을 보고 사람들은 

지지할 집단을 결정한다. 그에 따라, 정당은 이념과 성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직접 결정하던 것을 이제는 정당과 대리인이라는 두 가지 선택사항에 모두 압축해

쑤셔 넣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어느 국회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성향을 표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존방식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의 판단과

결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른 성향을 갖은 사람들이 모여 정치 이야기를 하면, 핏대를 세우다가 결국에,

"그렇다, 나라 망해 이 양반아! 뭘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라고 일갈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


ps: 오늘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서 쓴 글입니다. 아마도 정치학에 관련된 자료가 있겠죠.

행여나 이 글을 읽으신 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뇌피셜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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