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를 즐기는 법
맞벌이 가족으로서 매일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등원과 출근 전쟁이 펼쳐진다.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1차전.
기상부터 시간 맞춰 밥 먹이기, 양치, 옷 입히기까지 일어나는 소규모 전투들. 하나하나 해내며 숨 가쁘게 출근을 마치고 나서야 잠깐의 여유가 찾아온다.
회사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하면 다소 편안해진다. 이제 10년 차 직장인이기에 업무 속 크고 작은 이벤트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출근 전 전쟁의 소규모 전투들에 비하면 차라리 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퇴근 후 가정으로 다시 “출근”하며 2차전이 시작된다.
가정에서의 반복적인 고민들은 줄곧 내 머릿속을 채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로 할지, 밥을 먹고 씻길지, 씻기고 밥을 먹일지, 누가 씻길지, 설거지와 빨래, 청소는 어떻게 할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 속에서 이런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렇게 하루를 치열하게 정리하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두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여전히 당황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준비로 정신없이 움직이던 중 일이 하나 터졌다.
반찬통을 3개 동시에 옮기다가 그중 맨 위에 있던 멸치 반찬통이 손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반찬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 나는 머릿속에서 “아… 오늘의 변수는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반찬통이 내구성이 강했는지, 바닥에 떨어지고도 무사히 멀쩡한 상태였다. 멸치 한 톨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변수가 될뻔한 일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게 다행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평소처럼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뜻밖의 변수가 찾아왔다. 한창 밥을 먹던 아이가 피곤했는지 그대로 식탁에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깨워도 미동도 없이 깊이 잠든 아이를 보며, 얼마나 피곤했으면 식사 도중에 잠이 들었을까 싶었다. 다행히 저녁 먹기 전에 미리 샤워를 시켜둬서 양치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밥을 마저 먹이려고 했을 텐데, 문득 이 상황을 굳이 해결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에너지를 쏟고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그냥 잠을 잘 자게 두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변주'일 테니 아이의 리듬에 맞추어보기로 했다. 결국 깨우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눕혀 재웠다. '배가 고프면 그때 깨겠지' 하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다 밤 12시쯤, 아이가 배가 고팠는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이미 소화가 잘되게 미리 쑤어둔 따뜻한 계란죽을 준비해 두었기에 온 가족이 모여 새벽의 식탁에서 소소한 식사를 즐겼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퍼지는 계란죽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있는 이 순간이 오히려 따뜻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마주할 때, 그 상황을 굳이 통제하려 하지 않고 흘러가게 두는 것이 때론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은 변주가 더 큰 여유와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며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소중한 밤이었다.
매일의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변수를 마주할 때마다 불안감과 긴장감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변수가 오히려 반갑다. 변수를 이제 ‘지루한 일상에 찾아온 변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 없는 반복 속에서 오히려 이런 돌발 상황들이 일상에 작은 재미를 더한다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오히려 내가 딱딱하게 고정해 두었던 생활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가끔은 즐거운 긴장감을 주기까지 한다. 작은 변화가 삶을 유연하게 해 주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순간을 더 즐기게 만든다.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가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변주를 즐기며 일상에 더 많은 여유를 불어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