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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Aug 09. 2023

대학병원 의료 폐기물 노동자

카트에 누워서 글을 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다. 아프고 살기가 싫으니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고 아무에게나 말을 걸게 된다.오늘은 청소 노동자가 보였다. 저녁 7시 20분쯤 청소 노동자가 의료 폐기물이 담긴 하얀 통을 꾹 누르고, 이를 들어다가 일정한 장소에 놓는다. 이거 어디로 가냐고 묻자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흘겨 보면서 “여기 두면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역업체 노동자가 나타났다. 그 통을 ㄷ 자로 된 하얀 철제 카트에 실었다. 카트는 이미 그 통들로 가득 채워 져 있었다. 그걸 끌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스토커처럼 그 사람을 따라 갔다. 그는 밖에 있는 세탁물 수집장으로 향했다. “신기해서 따라 왔어요” “구경해도 되요?“ ”제가 검사 결과 기다리고 있는데 할 게 너무 없어서요“ 라고 말하니 그러라고 하셨다


하루에 이 병원에서 나오는 폐기물통은 300여개다. 그 분은 폐기물통 마다 다른 색깔의 라벨을 붙였다. 일반실, 격리실, 혈액 오염 등등. 왜 붙이냐고 물어보니 종류마다 태우는 온도가 다르단다. 격리실에서 나온 폐기물은 더 높은 온도로 태워야 한다고. 간호사, 청소 노동자, 의료 폐기물 노동자 중에 누가 가장 위험하냐고 물었다. 그는 “제가 볼 땐 간호사가 더 위험한 것 같아요. 우리는 담아놓은 걸 가져오는데 간호사들은 수시로 직접 환자를 접촉하잖아요. 폐기물을 직접 담고요. (그러면 청소 노동자는요?) “청소하는 사람도 위험하죠. 겉에 균이 묻어 있을 수 있으니까“


새벽 4시쯤(들어오는 시간도 매번 다르다고) 차량이 들어와서 청주로 보내지고(내 고향에 그런 곳이 있다니 신기) 그 곳에서 태워진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대다수의 병원에서 나오는 의료 폐기물은 청주로 간다고 했다. 서울의 모 대형 병원은 돈이 많아 자체로 태우는 시설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각장에서 태우는 사람들은 산재 위험이 높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분에 따르면,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10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주6일 새벽 5시 반 또는 6시까지 출근해서 일한다. 하루 8시간 정도를 일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 많고, 연장 근로도 많다고 했다. 그 분의 동료는 오늘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까지 일했다.


그 분은 전직 고3 영어 강사였다. 실제로 영어를 매우 잘한다. 사업 하다가 빚을 많이져 쿠팡, 마켓컬리 물류센터 등을 거쳐서 이 곳에 왔다. 알바몬을 통해서 이 일을 알게 됐고, 물류센터 보다는 일이 편하다고 했다. 3년 동안 일 해서 빚을 다 갚았긴 한데, 남은 돈은 없다며 웃었다. 내년까지 일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이제는 성인 대상으로 교육을 하려는 것 같았다. 사업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른다고, 그래서 요즘은 기분 좋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 8시 14분가 되니 세탁물수집장에 불이 꺼진다. 그 분과 동료가 후문을 나서 퇴근을 하신다. 청소노동자 등 다른 노동자들도 삼삼오오 퇴근을 한다. 두 노동자가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피자헛 배달 기사가 병원으로 들어오고, CU 차량도 들어와 상품들을 부지런히 편의점으로 나른다.


간호사한테 전화가 와서 다시 병원에 들어 갔다. 퇴원을 하는데 다용도실에서 검정색 작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청소노동자가 보인다. 지친 표정으로 휴대폰을 한다. 그 곳은 휴게실이 아니다. 화장실 같이 생겨서는 수납함이 가득하고 두 사람 들어가면 가득찰 비좁은 곳이다. 비싼 병원비 내는 나한테도 침대를 안 주는 마당에, 청소 노동자에게 쾌적한 휴게실을 바라는 건 사치일까.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짧은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입사하고는 브런치에 누군가를 기록하는 일을 거의 못했다. 비록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얘기를 안 써서 행복했다. 병원 이름 넣어서 찾아보니 우리 회사에서도 계속 기사를 썼네. 안 그래도 비싼 돈 내고 침대에 못 누워 있어서 짜증나는데, 노동자 괴롭히기까지. 개 악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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