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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Dec 30. 2023

휴게실 없는 회사에서 도시락 먹는 방법

노동자 휴게실을 생각하면서

직장인들이 점심값으로 부담을 느낀다는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그 직장인은 대체적으로 서울에서 일하는 젊은 사무직 노동자겠지요.


점심값이 두려운 또 다른 직장인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을 쉬지 않았다는 70대 여성 노동자 이길자(가명)씨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녀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주6일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습니다. 그녀는 노란색 헬멧을 쓰고, 검정색 전동스쿠터로 출퇴근하는 멋진 노인 입니다. 자주 눈에 띌 수 밖에 없죠. 오토바이 경력이 무려 6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표정과 리엑션 없는 저도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저는 내향적이라 사람에게 말을 잘 못 걸어요. 그런데 오늘은 길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잠깐 말을 걸어봤습니다. 제가 갔던 한식뷔페 식당에는 후식으로 토스트가 있어요. 토스트를 구워 딸기잼을 바르고 반을 접어서 종이컵에 넣은 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는 식혜를 들고 길자에게 향했어요. ‘70대인데 빵을 좋아할까?’ 안 먹으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노인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무뚝뚝한 저는 무표정으로 손을 뻗으며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드세요” 길자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길자: 우와 어디서 났어?

나: 한식 뷔페에서 가져왔어요.

길자: 거긴 얼마야?

나: 9900원이요.

길자: 한 끼 먹기 괜찮네. 요즘 어딜가도 최소 만원이니까. 그런데 그것도 매일 먹으면 돈 부담이 너무 커.근데 그거(빵) 가져와도 돼?

나: 그럼요. 제가 잼도 열심히 발랐어요. 더 가져오고 싶은데 제가 손이 세 개가 아니라서요.

길자: 내가 빵 진짜 좋아해


길자는 회사에 도시락을 싸와요. 국하고 밥. 단촐합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서 도시락까지 싸오다니 길자는 참 부지런한 K-직장인이에요. 길자는 1시에 점심을 먹는대요. 점심시간을 포함 휴게시간은 1시간이고, 휴게시간은 무급이고요. 그래서 한 시간분의 임금(만원)은 받지 못하는데다, 점심까지 사먹으려면 최소 만원은 줘야 하니까 출근을 하면 하루에 2만원은 손해보는 셈이지요. 회사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면, 한 달 동안 점심값으로 25만원은 써야 해요. 그러니 도시락을 싸올 수 밖에 없죠.


냉골이라 이 곳에 반찬 보관하면 안 상한다고 해요.


사무직 노동자에게는 꽤 낯선 질문을 던져봅니다. 길자는 도시락을 어디에서 먹을까요. 사람 몸을 제대로 펴기 힘들만큼 매우 비좁은, 창고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습니다. 테이블도 의자도 없기 때문에 바닥에서 먹거나, 스티로폼이나 신문지 깔고 앉아서 먹어요. 심지어 냉골입니다. 밥을 다 먹으면 그곳에서 쉬어야 합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서서 육체노동을 하는 길자는 편하게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습니다. 길자네 회사에는 휴게시설이 없습니다. 설치 의무가 없기 때문이죠.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8월 18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도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 됐습니다. 상시 근로자 20인 이상이어야 합니다. 10인 이상 20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7개 직종(전화상담원, 돌봄종사원, 텔레마케터, 배달원, 청소 미화원, 아파트 경비원, 건물경비원) 노동자가 2명 이상 있는 사업장이 적용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근로자가 4명인 길자네 회사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지자체에서 (경로당처럼) 인근에 노동자 공동휴게시설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정수기도 놓고, 침대도 놓고, TV도 놓고, 밥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테이블도 놓고요. 인근에 일하는 사람들 엄청 많거든요.


20대 중반부터 사무직 노동자로 살았던 저는 단 한 번도 휴게실 때문에 불편을 겪은 일이 없습니다. 가끔 언론에 노동자 휴게실에 대해 보도가 되면,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휴게실이 노동자에게 왜 중요한지 느끼게 해준, 타인의 고통에 무지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해준 길자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앞으로 다른 노인들에게도 간식 공세를 많이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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