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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당현경 Sep 16. 2021

너의 반전은 진행 중

말 없는 아이의 회장 선거 도전기!!

"엄마, 2학기 회장 선거에 나가보려요"


가슴이 철렁하다.

"1학기에는 3표 받았지만, 2학기에는 한 표만 더 받으면 좋겠어요"


3학년이 된 막내가 1학기에 이어서 2학기  반회장 선거에 또 나간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체육부장 선거에 나간 며칠 전 저녁때 

" 체육부장 선거에 나갔는데 0표 받았어요" 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 아. 그랬어? 속상했겠네" 하고 말하니 그제야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6세였던  막내를 데리고 키즈카페로 향하던 때가 떠오른다. 언어치료를 시작한 막내에게 친구가 필요함을 느껴서 논술교실을  휴강하고 서둘렀다.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아야 해" 라며 나도 모르게 말하고 또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막내는 입을  꼭 다문다.  아무리 말을 걸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다. 그런 막내의 모습이 무척 낯설다.

 친구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는데 막내는 가만히 서 있다. 어떻게 낸 시간인데... 나는 그런 모습이 답답하고 애가 타서 막내를 친구들 사이로 밀어 넣는다. 여자 친구들은 소꿉놀이를 하고 공주옷을 입으며 서로 몰려다니며 논다. 6세 꼬마들도 벌써부터 친한 친구가 있는 것 같다. 막내의 혼자인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화가 벌컥 밀려왔다.  


 " 왜 안 놀아? 친구들하고 얼른 같이 놀아"

처음에는 다정한 듯한 나의 목소리에도 점점 짜증이 담겨 있다.  키즈카페에서 나올 시간이 될 때 나도 폭발한다.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제 다시는 안 와!!"


그런데 무표정인 막내의 얼굴 위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미안함과 큰 근심으로 이번에도 친구와의 만남은 실패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도 늘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반에서 말을 안 하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런 막내가 3학년이 되면서  1학기 학급 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한다. 반에서도 목소리가 가장 작은 아이가 말이다. 학원에서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선생님들이 종종 패스하는 아이.

그런데 언니와 오빠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는지 공약을 써서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것이다.

" 엄마, 잠깐 서 보세요. 내가 공약 발표할게.

안녕하십니까? 회장 후보 김**입니다. 제가 회장이 되면 첫째......"


  혹시 앞에 나가서 말을 못 할까 봐

" 안 돼도 괜찮아. 그리고 지금은 마스크를 쓰니까 잘 안 들릴 거야. 크게 말해야 해"

그렇게 외우고 또 외웠는데... 본인과 친한 친구, 그리고 또 고마운 누군가에게 표를 받아서 3표.

그날 저녁도 아무렇지 않게

"3표 받았어요"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엉엉 울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2학기


"언니도 3학년 때, 4학년 때는 3표였어."

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

그런데 막내가 하는 말이

"괜찮아요. 지난번에 3표 받았으니 이번에는 4표만 받았도 좋아요. "

말은 참 기특한데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회장이 되면 반전을 보여주겠다는 공약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선거 당일. 큰 아이와 둘째보다도 막내의 선거가 더 떨린다. 회장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상처를 받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학교 수업이 끝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놀이터에서 노느라 들어오지 않는다. 학교 끝나면 집으로 달려오던 아이가 얼마 전부터 놀이터에서 친구랑 논다도 늦게 들어온다.


오후 한참이 지나니 별일 없나 보구나,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 엄마! 참! 나 부회장 됐어요! 내가 부회장이 됐다고!! 하*이랑 나랑 동점인데 내가 2표 더 받았어요"

 아이쿠! 장하다. 진짜 큰 일을 해냈구나. 네가 해냈구나.


" 근데 나 회장 선거에서는  떨어졌어요. 근데 4표 받았어요. 나를 찍은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어. 진짜 4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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