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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당현경 Jul 22. 2021

보고 싶은 날 토마토 주스를 마신다.



" 엄마, 외할아버지. 내일 오신대요"


그렇지 않아도 친정 아빠는  서울 큰 병원 진료가 힘들어 근처 대학병원에 힘들게 진료를 받은 날이셨다. 사실은 내가 병원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 맞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수업을 핑계로, 아이들 학원을 핑계로 수원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진료를 받고 엄마랑 마트에 가셨나 보다.


반가운 마음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내일 수업이 일찍 시작되는데 어쩌지? "이다.


하루가 지나서 아침이 되었다. 오실 시간이 다 되었는데 갑자기 전화통화를 할 일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시간만 흐린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진짜 좋아하시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맛있게 드셔서 그렇게 생각하는 지도) 찜을 배달앱을 주문한다.


매운맛

보통

안 매운맛

아주 안 매운맛


안 매운맛과 아주 안 매운맛을 살짝 고민하다가, 두 분의 소화가 걱정이 되어 아주 안 매운맛으로 주문. 그리고 콩나물 국이라도 끓여야지~하고 냉장고를 여는데 분명 있던 콩나물은 보이지 않고 부모님은 도착하셨다.


세상에~과자, 과일, 고기, 음료, 견과류, 반찬... 나와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은 다 담으셨단다.


'반찬도 없는데 잘됐다.'싶은 마음에 엄마가 해오신 반찬을 다 담고 보니, 내가 만든 반찬은 0개. 보리차도 떨어져서 집에 있던 녹차로 끓여 놓은 뜨거운 물.


그리고 찜이 도착했다.

"이거 애들 먹겠어?"

좀 빨갛다 싶어서 먹어보니 그동안 먹어본 매운맛 중에 최강이다. 이상하다 싶어서 배달한 정보를 살펴보니 '아주 매운맛'이다. 


아이고 어째... 하면서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분명 아주 안 매운맛이었는데 왜 아주 매운맛이 되었을까? 논술 선생님인데 이렇게 허당이다.

엄마가 싸온 반찬에 아주 매운 찜에 미지근한 물의 조합. 몸도 아픈 아빠는 괜찮다며 드신다. 엄마도 드시긴 하는데 속이 걱정이 되었다.


도착하신 지 1시간 반 밖에 안 되었는데 나는 수업 시작이다. 다음 주가 5주라 휴강을 한 주 미뤄도 어머님들께서 이해해 주셨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고 부모님은 그대로 시골로 내려가셨다.

가시고 나서 수업하는 동안 계속 마음이 안 좋다. 1시간 반의 짧은 만남을 위해서 부모님은 반찬을 준비하고 왕복 4시간을 차로 이동하시는 것이다. 참 죄송하다. 콩나물국이라도 끓였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도 친정엄마는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싸서 병원에 오셨다.  딸 중에서 가장 착한 셋째 딸.  외할머니는 수원 근처의 병원에 계셨는데도 나는 할머니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보실 쯤에서야 가 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엄마는 종종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신 이야기를 들었다. 스치는 듯하신 말씀인데 엄마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 있어서 마음에 오래 남았나 보다.  분명 번호인데 주인 없는 벨. 나 역시도 그 상황이라면 쉽게 번호를 지울 수 있을까?


그런 엄마가 종종 전화를 하신다. 그런데 나도 애가 셋.  수업 준비. 왜 이렇게 바쁘고 정신이 없는지 통화 한 번 오래 하지 못한다. '보고 싶은 날'은 친정 엄마의 마음에서 써 본 시다. 엄마도 보고 싶고 딸도 보고 싶은 70을 앞둔 여인. 전화를 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보고 싶을 뿐.





"토마토 40개를 갈아서 만든 거야. 꼭 마셔"

하시면서 페트병 세 개를 꺼내신다. 진짜 토마토만 갈아서인지 맛있는 맛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토마토 주스는 꼭 마셔야 할 것 같다.


몸에 좋은 것은 함께 먹으려는 남편도 토마토 주스를 한 컵 마시더니

" 이건 마누라 마셔. 마누라 먹이려고 갈아오신 걸 거야" 한다.


과일을 제일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과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 그래도 좋아하는 과일은 토마토. 엄마랑 아빠가 어린 시절에 갈아주시던 그 토마토 밍밍하면서도 새콤한 주스에 설탕을 타 마시던 그 기억.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훌쩍 넘은 나는 여전히 추억을 마신다.




보고 싶은 날


               김현경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건다

" 엄마, 저예요"

그런데 이젠 없는 번호

맞아, 엄마는 이제 집에 없지

그런데 바로 끊지 못하고

핸드폰을 한참 바라본다


문득 딸이 보고 싶어 전화를 건다

모처럼 전화가 연결되어

"별일 없지? "

"엄마, 나중에 할게요"

바쁜 목소리만 남기고 끊긴 전화


하늘 간 엄마도 보고 싶고

엄마가 된 딸도 보고 싶은

 그런 날


그냥 보고 싶은 날.


-꽃이 너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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